[부부갈등 탐구]부부는 호혜적 관계

  • 입력 1997년 10월 21일 08시 19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초등학생 오누이가 탔다. 누나가 화판을 잘못 사온 남동생에게 잔소리를 계속했다. 처음에는 듣고만 있던 남동생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더니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달할 무렵 화판으로 누나의 머리를 내리쳤다. 부부관계에서는 한쪽 배우자는 잔소리가 많고 다른 쪽은 화를 누르고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대방으로부터 대등한 반응이 없으니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혹은 약이 올라서, 혹은 더욱 기가 살아서 잔소리의 강도를 높이게 된다. 박씨부부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박씨에 비해 야무졌던 부인은 평소 남편의 행동에 간섭하며 실수를 그냥 보아 넘기는 적이 없었다. 잔소리 끝에 부인은 『이렇게 살 바에야 혼자 사는 것이 낫겠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덧붙였다. 남편과 헤어지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남편의 평소 성격으로 미뤄 정말 헤어질 위인도 못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나이 50이 넘어 다른 여자가 생기면서 박씨는 정말로 이혼을 요구하고 나왔다. 사실 부인은 잔소리를 통해 자신의 뜻을 관철하고 스트레스를 풀어왔기 때문에 결혼생활에 근본적인 불만이 없었다. 남편도 그러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박씨로서는 부인과 불평등구조에 대한 불만이 누적돼 부부관계 자체에 회의를 느낀 것이다.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표현하는 쪽은 내가 항상 옳다던가,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배우자에게도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등의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다. 부부관계도 다른 사회관계와 마찬가지로 쌍방간의 호혜성이 중요하다. 배우자의 감정이나 욕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나의 언행이 배우자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서 호혜적 의사결정 과정을 거치는 연습이 필요하다. 최혜경(이화여대 가정관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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