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가 심상찮다. 페넌트레이스 방어율 1위(3.65)의 국내 최강 마운드가 한국시리즈에선 초비상이 걸렸다. 상대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다.
해태의 투수난은 「풍요속의 빈곤」. 김응룡감독은 20일 2차전에서 이 말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이날 해태는 6회도 되기 전에 다섯 명의 투수를 냈다. 그러나 폭죽처럼 터진 LG의 「기관총 타선」을 막는 데는 속수무책이었다. 4회에 구원등판한 이강철 김정수가 무너지자 박진철 이후엔 더 이상 낼 투수가 없었다.
남은 투수중 임창용은 승리를 책임져야 하는 최종 마무리, 조계현은 22일 광주 3차전 선발, 이대진은 1차전 선발투수였기 때문이다.
이같은 해태의 자충수는 「V8」의 자만심에서 비롯됐다. 해태는 올 한국시리즈를 맞아 막강 투수진의 위용을 뽐내기라도 하듯 25명의 출전선수 명단에 투수를 8명밖에 올리지 않는 호기를 부렸다. 반면 LG의 투수진은 10명.
해태는 이중 선발로 이대진 김상진 조계현 등 오른손 정통파 3명을 배정했다. 왼손 김정수와 강태원은 중간계투. 문제는 해태 마운드의 무게중심이 임창용 이강철 박진철 등 언더핸드스로 투수에 쏠려 있다는 점이다.
LG는 잠수함 투수의 천적인 최강의 왼손타선을 보유한 팀. LG는 해태가 1대0으로 앞선 4회 굳히기에 나선 세번째 투수 이강철을 기다렸다는 듯이 난타해버렸다.
이강철은 지난해 한국시리즈 MVP지만 LG전에선 재미를 보지 못한 투수. 올해도 고작 3경기에서 5.2이닝을 던져 1세이브만 올린 채 방어율 7.94의 불명예스런 성적을 남겼다.
해태는 부랴부랴 4회 1사 만루 위기에서 김정수에게 중임을 맡겼지만 이날만큼은 통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해태는 1대5로 역전당한 5회에 일찌감치 경기를 포기했고 이후 무기력한 플레이로 일관, 팬들로부터 심한 질책과 야유를 받았다.
한국 최고의 명장 김응룡감독. 그가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갈 지를 지켜보는 것도 올 한국시리즈의 또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장환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