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최용석/누가 「양심수」인가

  • 입력 1997년 11월 1일 20시 30분


국가의 법질서는 사회공동생활을 규율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질서가 인간의 존엄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갈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 분명히 밝혀야할 의미 ▼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지향하며 건국된 이래 수많은 민주투사들의 활약이 돋보였던 것은 그만큼 민주주의체제 자체가 허약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4.19와 6.10항쟁을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도 이제 법질서의 진보로 그 토대를 갖춘 셈이 되었다. 다시 말해 이제는 정치권이 민주주의 논쟁에서 해방된 만큼 산적한 민생현안과 법제도의 정비에 진력할 때이다. 이러한 시기에 나온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양심수 사면」발언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국민들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70, 8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양심수란 용어는 과거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이 적절치 않은 죄목으로 구속당했을 때 이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말이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양심수라는 말이 어느 정도 국민의 공감을 얻었고 민주화 과정에서 그들은 모두 석방되었다. 심지어 특별법을 만들어 사망한 자까지도 명예회복을 시켜주었다. 국제사면위원회가 정의하는 양심수란 「폭력을 사용하거나 옹호하지 않음에도 신념 피부색 성별 인종적 기원 언어 종교를 이유로 구금된 사람들」을 말한다. 그렇다면 김총재가 지칭하는 양심수란 그 정체성이 의문시되므로 먼저 그 의미를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양심수란 공산주의자가 아니면서 애국을 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어 문제가 된 사람을 의미한다」했는데 그렇다면 애국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마치 북한 외교관들이 외화획득을 위해 마약밀매를 공공연히 일삼은 것을 옹호해주는 듯한 발언이다. 국제사회로부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는 이러한 발언을 공당의 총재가 그것도 대통령후보로 나선 사람이 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어서 「단체에 속한 것과 이적행위를 한 것은 구분해야 할 것」이라며 「단체 가입만으로 탄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는데 이는 그 가입단체가 폭력혁명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말이다. 사법부가 이적단체 가입을 유죄로 인정하고 있음에도 유력한 대통령후보가 이적단체 가입은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 일선 사법기관의 혼돈을 누가 책임질 것이며 이적단체 가입을 처벌한 공안기관과 사법부는 탄압의 주체라는 말인지 의심스럽다. ▼ 정략에 이용해선 안돼 ▼ 선거가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나오는 정치권의 정략적 사면 논의에 이제 국민들은 식상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역대 정권의 사면 복권의 역사를 보면 이른바 시국사범 대량구속과 사면 복권의 반복은 통치수단으로 악용되었고 비리정치인의 끼워넣기식 편법운용으로 대통령의 사면권은 그 본래의 취지가 퇴색되고 말았다. 사면 복권의 남용은 결과적으로 3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체제 자체의 안정성을 해친다. 얼마전 김총재는 전두환 노태우씨 사면에 대하여 아직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언급한 바 있는데 그것은 김총재의 양심수 석방 논리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을 아울러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노 전직 대통령이야말로 김총재의 기준에 맞는 양심수를 가장 많이 양산한 체제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구속과 사면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더이상 사면될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법률정비에 힘을 쏟아야 하며 이제는 특정정치세력이 정략적 목적으로 사면을 도구화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최용석(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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