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자주민증 도입 신중하게 하라

  • 입력 1997년 11월 16일 20시 27분


전자주민증 도입을 위한 주민등록법 개정안이 국회 내무위와 법사위를 전격 통과했다. 국민의 사생활과 직결된 주요 법안이 사회적 공론화과정을 거치지 않은채 국회에 상정된 것도 문제지만 정부의 수정법안을 관련 상임위에서 충분한 토론 없이 표결처리한 것은 졸속 입법의 대표적인 사례다. 전자주민증은 정보화사회에 걸맞은 편리한 제도이기는 하다. 여러 증빙서류를 하나로 통합했을 때의 국민 편의와 행정간소화 등을 감안하면 그렇다. 그러나 막상 이 제도를 도입, 시행했을 때의 부작용과 역기능을 사전에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자주민증은 한마디로 국민신상정보 집약관리 시스템이다. 정부는 전자주민증이 기존의 개인정보들을 통합관리함으로써 국민편의를 증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예견되는 부작용도 엄청나다. 정보는 통합되면 전혀 다른 기능과 위력을 갖는다. 개인의 가족관계, 직업 수입 재산상태, 중요한 경제활동, 병력과 사고경력 등이 특별한 법적 보호없이 데이터베이스로부터 손쉽게 흘러나간다면 국민의 기본권과 사생활은 여지없이 짓밟히게 된다. 70, 80년대 미국 프랑스 호주 등에서 전자주민증과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려다 국민 반대로 무산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부는 개인의 사생활 침해 우려가 큰 의료보험 국민연금 운전면허 관련정보 등을 제외한 수정법안을 다시 내놓아 일단 상임위를 통과토록 했다. 그러나 이 법안이 국회본회의를 거쳐 법제화한 후에 전자주민증에 수록될 정보항목을 늘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전산화를 통한 행정간소화도 좋으나 자칫 개인의 통합 신상정보를 국가권력이나 심지어 범죄단체에까지 넘겨주어 악용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21세기 정보화는 20세기에 쟁취한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의 또 다른 표상이어야 한다. 국회는 이번 회기내 법제화를 서둘 것이 없다. 여론을 폭넓게 수렴해 합리적인 보완책을 마련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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