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65)

  • 입력 1997년 11월 26일 08시 17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33〉 『오, 주인님, 사실은 나도 태어날 때부터 애꾸눈이는 아니었습니다. 내가 애꾸눈이가 되기까지는 참으로 기구한 역정이 있으니 들어보십시오』 여주인 앞으로 나선 두번째 탁발승은 이렇게 자신의 신세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국왕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고, 왕자라는 신분에 걸맞은 훌륭한 교육도 받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코란의 영창을 배웠으며, 온갖 종류의 서적을 읽고 학자들과 그 내용을 토론하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데 취미가 있었으므로 철학이나 수리학, 점성술이나 시인들의 아름다운 시를 배웠습니다. 그밖에도 나는 모든 분야의 학문에 정진한 결과 당대의 어떤 인물과 자리를 함께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특히 내가 재능을 나타낸 것은 서예였습니다. 나의 서체는 모든 서예가들을 능가했으니, 나의 명성은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왕이란 왕은 모두 나의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인도의 왕은 내 서체를 몹시 좋아하여 왕자의 신분에 걸맞은 진귀한 선물을 보내고 나를 인도로 초대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내가 인도로 가겠다고 하자 조정의 신하들은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어떤 위험이 따를지도 모를 그 먼 여행길에 나를 보낸다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신하들의 이런 반대에 아버지도 수긍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습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인도의 고승들을 만나 학문과 철학에 대하여 토론을 해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인도 국왕으로부터 초대를 받았으니 그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행을 통하여 외국의 갖가지 신기한 문물도 배워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신하들을 온갖 말로 설득했습니다. 나의 끈질긴 설득은 마침내 성과를 거두었으니, 아버지와 아버지의 신하들은 내가 인도로 가는 것을 허락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나와 나의 신하들을 위하여 여섯 척의 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나는 아버님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인도를 향해 닻을 올렸습니다. 항해는 꼬박 한 달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 긴 항해가 끝나자 마침내 우리는 육지에 닿았습니다. 뭍에 닿자 우리는 배로 실어온 말을 끌어내리고 인도 왕에게 바칠 선물은 낙타에다 실었습니다. 그리고는 험난한 길을 출발하였습니다. 인도 왕이 사는 궁전은 거기서부터 다시 육로로 스무 날을 걸어가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과 이틀 정도 걸어갔을 때였습니다. 지평선에 자욱이 모래먼지가 일어나는가 싶더니 한 무리의 기마병들이 나타나 이쪽을 향해 돌격해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자세히 보니 그들은 황야를 오가는 상인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금품을 갈취하는 마적단이었습니다. 그들은 갑옷을 입고 괴상한 모양의 투구까지 썼는데 사납기가 흡사 굶주려 미친 이리떼 같았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창을 겨누어 들고 우리를 향해 돌진해 왔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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