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증권 부도에 이은 동서증권의 영업중지로 증권업계는 이제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 냉혹한 생존경쟁의 장으로 내몰리게 됐다. 피말리는 전투가 시작된 것이다.
이미 「다음 차례」로 거론되는 증권사도 5,6개나 된다.
증권사들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취약한 영업기반으로 수익성이 나빠진데다 계속된 주가 폭락으로 대규모 주식 평가손마저 겹쳤기 때문. 시기가 문제였지 부실 증권사의 파산은 불가피한 것으로 예견돼왔다.
▼악화일로를 걷는 영업실적〓국내 34개 증권사는 96사업연도(96년4월∼97년3월)에 총 6천6백44억원의 적자를 낸데 이어 올 상반기(4∼9월)에도 순손실 규모가 3천4백억원에 달해 1년6개월간 적자폭이 1조원에 육박했다.
이는 96사업연도 채권매매 손실이 6천여억원, 주식매매 손실이 올 상반기 4천5백억원에 이를 정도로 유가증권 매매손실이 커졌기 때문. 이와 함께 96사업연도중 상품주식(증권사가 자기자금으로 매입한 주식) 평가손도 1조3천5백46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62% 가량 늘어나 수지악화를 부추겼다.
▼취약한 수익구조〓유가증권 매매 또는 인수공모로 벌어들이는 수입에 비해 주식 위탁매매 수수료에 과다하게 의존, 최근 주가폭락으로 고객 주문이 격감해 큰 피해를 봤다.
올 상반기 증권사의 위탁수수료 비중은 전체 수입의 3분의 1이 넘는 35.3%. 미국의 경우 이 비중은 15%에 그친다.
상품주식 투자비중이 높은 것도 증권사 적자의 원인. 미국과 일본은 이 비중이 자기자본의 10% 이하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60%까지 투자가 가능한 상태. 주가가 상승하면 이익을 보지만 지금처럼 폭락할 때는 적자의 주범이 된다.
▼과다한 단기 차입금〓증권사는 이른바 긴급자금인 콜시장의 가장 큰 고객.
증권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일 현재 전체 증권사가 콜시장에서 조달한 단기 차입금은 무려 10조5천억원으로 증권사의 차입규모가 많은 날은 콜금리가 반드시 상승할 정도.
증권사들은 이렇게 조달한 자금으로 주식평가손을 메우거나 최근 회사채시장이 마비되면서 대신 떠안게 된 채권매입 비용으로 충당했다.
또 콜 차입금을 부실 계열사에 넘겨 주는 등 관계회사의 자금줄 역할도 떠안아 부실을 재촉했다.
▼무리한 외형경쟁〓증권사의 외형은 최근까지 자본금 규모보다는 약정 실적에 따라 순위가 매겨졌다. 증권사 영업맨은 약정 독려로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
심지어 약정실적을 올리기 위해 고객의 허락도 받지않고 임의로 주식을 사고 팔아 분쟁을 일으키는 경우도 허다하다.
약정 경쟁은 능력에 부치는 점포 신설을 재촉했으며 차입금 규모를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했다. 회사채 등 채권 인수업무도 증권사간 과당 경쟁으로 수수료 덤핑행위를 남발, 수익성을 스스로 깎아내렸다.
〈이강운·정경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