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통령께서 입장하십니다』
어느 해였을까, 대형 체육관에서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울려퍼졌던 합창 「대통령 찬가」를 들었던 것이…. 대통령이 누구였는지, 무슨 행사였는지 기억도 희미하지만 확실히 생각나는 한가지가 있다. 선율만 어렴풋할뿐 가사도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 그 노래의 「우∼리 대통령」이란 대목에서 가슴이 뭉클해졌었다는 기억. 「아 정말로 저 이가 온 국민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통령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제 아침 출근하기 전 일찌감치 투표장에 다녀오면서 문득 그 때 기억이 되살아났다. 주변에서는 『지금까지 내가 투표한 사람이 한번도 대통령에 당선된 적이 없다』며 『아예 투표를 하러가지 말까』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그」에게 내가 지지한다든지, 반대한다든지 하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투표할 것을 강권했다. 결국 「우리 대통령」에게 힘을 보태주거나 아니면 오만해지지 말라거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므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전임 대통령들이 한결같이 어려운 처지에 빠진 것을 보고 배우는 게 있다면 좋을텐데. 「나는 대통령」이라는 자부심보다 휘청거리는 조국을 등에 진 막일꾼이라는 겸손함을 가지면 좋겠는데.
「해칠 힘이 있으면서도 아무도 해치지 않고/과시할 수 있으나 하지 않는 사람들/남을 감동시키면서도 그들 자신은 돌과 같아/흔들리지 않고, 냉철하며, 유혹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
소장 영문학자가 펴낸 영시에세이집 「셰익스피어도 바퀴벌레를 보고 웃었을거야」라는 책을 읽다가 발견한 구절이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의 한대목이라는데 우리 대통령이 진짜 그런 사람 중의 하나가 되길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일까.
누구에게든 정붙이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한번 밀어붙이자고 맘먹으면 기대 이상으로 해내고 스스로 놀라는 우리 국민들. 국제통화기금(IMF)선고로 축제는 서둘러 막을 내렸고 이제 차분하게 받아들일 때다.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우리가 만들었고 앞으로의 나날도 「그」가 아니라 바로 우리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고미석<생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