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자유계약 선수 이순철『나는 뛰고 싶다』

  • 입력 1997년 12월 21일 20시 43분


꿈에도 버리지 못한 선수생활에의 미련. 오늘도 아침부터 등을 떼민다. 간편한 러닝복 차림으로 나선 길.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13년을 다닌 길과 달라서일까. 광주구장이 아닌 이 길은 왠지 낯설기만 하다. 일과라고 해봐야 헬스클럽에서 땀을 뺀 뒤 수영장에서 물살을 가르는 게 고작. 이건 아닌데 싶다. 이젠 후배들을 만나는 것도 두렵다.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누구에 대한 분노인가. 시즌 중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는 경기에 대수비로 나간 뒤 타석이 돌아오면 빠지는 수모도 참아냈다. 해태에선 은퇴 후 유학 알선과 코치를 보장했다. 고마웠지만 사양했다. 힘이 남아 있는데 유니폼을 벗고 싶지 않았다. 수비와 달리기에선 아직 20대 선수 못잖은 자신감이 있었다. 트레이드를 요구했다. 그러나 들어주지 않았다. 사실 구단에서 처음부터 자유계약 선수로 풀어줬으면 이렇게까지 일이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LG 최종준단장은 책임지고 데려가겠다고 약속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게 잘못이었다. 해태에서 한솥밥을 먹은 삼성 서정환감독이 좋은 조건을 제시했지만 LG와의 신의를 저버릴 수 없어 양해를 구했다. 마침내 지난달 30일 자유계약 신분이 됐다. 그러나 LG는 팀 사정이 어렵다며 약속을 깼다. 이젠 어떻게 되나. 자유계약으로 풀렸지만 20여일째 나를 필요로 하는 구단은 나서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번씩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오른다. 약해지는 마음, 무너지는 가슴…. 그러나 아내의 따끔한 한 마디에 이내 정신을 차린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요.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아야 해요』 아내에게 미안한 만큼 더욱 힘껏 주먹을 쥐어본다. 「큰 호랑이」 이순철(36)의 「IMF겨울나기」가 유난히 추워보인다. 〈장환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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