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으로 이야기해서 작금의 경제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구조조정을 강행하는 방법밖에 없다. 물론 구조조정이 필연적으로 고용조정을 동반한다는 측면에서 이에 대한 근로자의 반발도 충분히 예상된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통해 희망있는 제품의 시장을 활성화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을 펴야지 고용 유지 요구에 집착하게 되면 구조조정은 불가능하게 되고 결국 도산에 의한 실업률만 높이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지금 이 시기는 누가 뭐라든 심각한 위기다. 엄청난 숫자의 기업들이 생산량을 줄이고 있거나 임시로 조업을 중단하고 있고 아예 문을 닫으려 하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 있어서 정리해고란 도산하지 않고 경영을 계속한다는 징표이자 하나의 대안이다.
▼정리해고 수용 불가피▼
모든 기업들은 파산의 위기에까지 몰리게 되면 오히려 정리해고도 불가능해진다. 정리해고를 하려 해도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파산의 위기에 직면하면 임금과 퇴직금을 정산할 여유도 없다. 따라서 이제는 정리해고 문제를 사용자만 살기 위한 화려한 제스처로 보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시각이 존재하는 한 구조조정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는 적자 기업만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더 큰 숫자의 실업을 초래하게 된다. 더구나 정리해고에 대한 저항은 결국 시장경제 원리에 역행한다는 불신을 불러와 국제경제로부터 외면 당하는 파국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법개정을 통해 정리해고에 대한 정당성의 판별기준으로서 지금까지 논란이 되어 왔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요건 대신에 ‘경영 합리화의 필요’라는 요건이 예시되어야 한다.
한국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계획 중인 많은 외국 투자자들은 적어도 새로운 정리해고제 논의가 단순한 제도 도입단계에 머무르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해석을 둘러싼 노사갈등의 여지까지도 완전히 축소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그들의 시각은 정리해고제가 단순히 경영자와 근로자 사이의 노사관계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즉 이 제도가 과거의 선례로 볼 때 외국기업들의 한국시장 진출에 대한 강력한 장애요인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시장에서의 퇴출시에도 높은 비용을 발생시켜 왔던 원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점은 사실상 국내 기업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정리해고의 문제가 시장의 진입과 퇴출에 대한 규제로 인식된다면 이는 시장경제의 기능에 대해 중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업기간 단축 노력을▼
따라서 이번의 정리해고제 논의는 단순히 법개정 차원의 문제를 넘어 세계화 시대에 따른 노동계의 인식전환까지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고용조정 문제가 돼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문제를 둘러싼 노 사 정(勞使政) 합의는 국수주의로부터 자유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사실상의 세계화 선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고용조정 시스템의 정착을 통해 우리는 많은 기업들이 구조조정과 흡수합병을 원활히 하여 그나마 다수의 근로자들이 실직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절대 필요하다. 정부도 이제 실업자의 구제를 위한 강도 높은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고 그것은 실업자의 숫자에 집착하기보다는 실업자의 실업기간을 단축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최근 정리해고 문제가 논란이 되자 경제실패의 책임을 근로자에게만 전가하는 발상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러나 기업이 정리해고를 필요로 한다면 그 상태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해해야 한다. IMF 한파가 노사 모두에게 무섭게 밀어닥치고 있는 지금 노와 사의 협력이 필요하다. 기업들도 정리해고가 필요없는 그런 경제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겠는가.
김영배(경총정책본부장/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