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에이리언4」

  • 입력 1998년 1월 7일 09시 12분


화가 구스타브 크림트의 대표작으로 세기말적 암시가 배어있다는 ‘유디트’가 있다. 이스라엘의 여장부 유디트가 동침한 적장의 목을 벤 후 취한 고혹적이고도 섬뜩한 자태를 그린 것이다. 크림트는 ‘유디트’의 몸 위에 진짜 황금을 칠해 성적인 유혹(에로스)과 죽음(타나토스)이 어른거리는 여성의 역설적인 매력을 극대화시켰다. 10일 개봉되는 ‘에이리언 4’의 영상이 ‘에이리언’ 시리즈 가운데 가장 음산하고 기괴한 광택을 담고 있는 것은 제작단계부터 필름에 배합한 순은(純銀) 때문이다. 강한 명암대비를 위해 주로 흑백필름에 쓰여온 순은은 ‘에이리언 4’에 스며들어 매혹적이면서도 전율스런, 음울하고도 섬뜩한 세기말의 빛을 발한다. 그 ‘세기말 테마’는 지난 79년 ‘에이리언’ 시리즈가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일관돼온 것. 황금만능주의에 젖은 인간들에 대한 불신감, 우주선 안에 괴물과 함께 갇혀 더이상 피할 곳이 없다는 폐쇄공포증, 인육(人肉)에 굶주린 괴물이 어느 동료의 뱃속에 숨어있을지 모른다는 극도의 피해의식이 그것이다. ‘에이리언 4’가 그 세기말 테마를 배증시키고 있는 것은 엽기적인 상상력을 유머러스하게 펼쳐온 프랑스인 감독 장 피에르 주네 때문이다. 그가 ‘델리카트슨’에서 보여주었던 인육 푸줏간 풍경은 이번 영화에서 외계괴물들의 숙주로 쓰일 실험용 인간들이 대형시험관 속에 담겨있는 장면, 여왕 괴물의 출산실에 누에고치처럼 매달려 있는 식용인간들의 모습으로 재연된다. 주인공 리플리(시고니 위버 분)는 이미 ‘에이리언 3’에서 자기 몸 속에 들어온 괴물 에이리언과 함께 자살해버렸다. 그녀가 ‘에이리언 4’에서 끔찍한 지옥도(地獄道)속에 던져진 것은 모종의 이유로 에이리언이 필요한 상업적 과학자들이 숨진 그녀의 유전자를 복제, 재생시켰기 때문이다. 그녀의 유전자에는 이미 에이리언의 유전정보가 섞여있으며 ‘과학 상인’들은 복제된 리플리를 개복수술, 괴물의 태아를 끄집어낸다. 장 주네는 ‘에이리언 4’의 새로운 전율을 만들기 위해 인간의 야만적인 지성―과학맹신주의의 비극을 끌어온 것이다. 새 작품에서 시고니 위버는 더없이 강력해졌다. 괴물 중의 괴물 에이리언의 피가 섞인 때문이다. 그녀의 피는 철판을 녹이고 그녀의 손은 칼에 관통돼도 금세 아문다. 그녀는 자기 몸에서 자란 에이리언을 포옹, 모성애로 방심시킨 다음 유디트처럼 제 새끼를 가차없이 처단해버린다. 여기에 앳된 얼굴의 위노나 라이더가 캐스팅된 것은 너무나도 전사(戰士)화된 ‘에이리언 4’의 여성상을 중화시키기 위해서다. 관객들은 그녀에게 인간미를 느끼지만 장 주네의 잔인한 장난기는 어느 단계에서 그녀가 로봇임을 밝혀버린다. 그러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음울함에서는 더이상의 유머를 찾아볼 수 없다. 우주선의 선실과 통로는 일체의 조명 없이 섬광만이 지나가며 보는 이를 지치게 만든다. 스릴러 오락영화에서 음울함을 본다는 것, 이것이 장 주네의 블랙유머가 아닐까. 〈권기태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