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국가경영 전반에 걸쳐 일대 난국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일상생활에 직결되어 피부로 느끼는 부분이 경제분야이기 때문에 마치 경제위기가 독립적으로 찾아온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어떻게 세계가 부러워한다고 하던 우리 경제가 누구의 잘못으로 이 지경이 되었느냐고 놀라고 실망하며 원망하고 분노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동안 서서히 축적된 사회전면의 총체적 비리 불법 부패가 폭발점에 도달하여 일시에 노정된 난국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이와 같은 예기치 못했던 불의의 상황에 처해서 우리는 냉철한 판단력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라는 국제금융기구의 금융지원에 따른 기업운영에 대한 충고를 마치 경제주권 침해라는 견지에서 비판하는 소리도 있는 듯하지만 경제주권을 손상한 책임은 우선 우리 스스로에 있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하는 것이 난국극복의 출발점이라 할 것이다.
동시에 경제난국은 국민경제 분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산업화 민주화 과정을 통하여 준거하고 사용해온 지금까지의 틀(패러다임 또는 패턴)을 가지고서는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통용될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산업화 민주화 과정에서 정경유착이라는 틀을 사용하여 왔다. 그 틀 속에서 세계를 놀라게 할 만큼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속에서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는 물질만능주의로 오염되고 혼탁해져 이기배타 독선오만 비리불법 허위은폐 불로소득 과소비 사치패륜 사회무질서 윤리도덕황폐 등 사회병폐를 초래하였다.
이와 같은 사회병폐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어느 한 부분만을 분리해서 취급할 성격이 아니다. 각종 병폐가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병폐의 근본인 정경유착의 틀을 부숴버려야만 한다. 정경유착의 틀 속에서 정치분야는 보스(두목)와 가신 중심으로 해 왔던 밀실정치를 청산하고 활발한 개방적 토론을 통하여 국민여론을 대표할 수 있는 정책정당정치를 발전시켜야 한다. 정경유착 밑에서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국민신탁으로서의 기업기본정신을 망각하고 합리적 기업경영에서 이탈하여 급기야는 국민생활을 위협, 불안케 하는 종래의 기업만행을 혁파하고 건전한 국민경제를 위한 경제구조의 개혁이 단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와 같이 하여 정계나 경제계의 투명성이 확보됨으로써 주권재민의 헌법정신에 따라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국민 모두가 소상히 알 수 있고 국정운영에 적극 참여하며 민주사회 발전에 응분의 책임을 느낄 수 있는 그런 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은 수천년 역사를 통하여 수많은 국난을 경험하면서 유구한 전통을 지켜 왔다. 국난의 성격을 명확히 이해할 때 모두 결심하고 궐기하여 힘을 모아 모든 시련을 극복하여 왔다. 오늘 직면한 시련에 있어서도 모든 국민이 각오를 새로이 하며 일부 국민은 벌써 시련극복의 길에 앞장서고 있는 것을 보면서 기쁨을 금할 길이 없다. 이와 같은 난국극복을 위한 민족 대행렬에서 더욱 더 중지를 모으고 서로 고통을 분담하고 단결협동을 확고히 하는 가운데 정경유착의 낡은 틀은 사라지고 민주사회의 새로운 틀이 발전하는 국민운동이 전개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경제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민주시민의식 위에 성립되는 민주사회의 새로운 틀 속에서 시련은 극복되고 우리나라는 한단계 높은 발전이 길이 보장되어 21세기 인류사회에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1933년 미국 제32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생산력이 1929년보다 44%나 감소하고 1천3백만명 이상 실업자가 발생한 미국경제에 직면하여 “우리가 불안하고 두려워할 것은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마음 그 자체”라고 하면서 미국민을 격려하였다. 경제위기를 맞아서 우리가 불안해할 것은 불안한 우리 마음뿐임을 알고 시련을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 힘을 내자. 힘을 모으자. 새로운 틀을 완성할 때까지 쉬지 않고 노력하자.
강영훈(세종연구소 이사장/전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