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9월 서울 배재고운동장. 지프 20대가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이어 “정지! 켜”라는 고함. 지프가 일제히 헤드라이트를 밝혔다.
서울시 대표였던 방첩대(CIC) 대 부산 대표 피복청팀의 도시대항 축구 결승전은 이렇게 지프의 불빛 속에서 진행됐다.
6.25의 상흔이 채 가라앉지 않았던 당시는 모든 게 턱없이 부족했다. 야간조명등은 생각지도 못한 시절, 결승전을 하던 도중 날이 어두워졌던 것.
방첩대가 2대0으로 리드. 남은 시간은 불과 20여분인데 일몰로 경기가 중단되면 재경기. 다 이긴 경기를 놓치기 싫었던 방첩대가 지프 헤드라이트를 밝혀 경기를 강행하는 묘수를 짜냈다.
그러나 주심 김덕준씨(작고)는 5분 정도 지난 뒤 경기를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판단, 중단을 선언했다.
당시 방첩대 소속이었던 박경호 스포츠TV 해설위원은 “경기를 중단시키자 방첩대 요원들이 달려드는 바람에 당황한 주심이 담을 넘어 이화여고로 달아나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권순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