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강병호/『기업의 氣를 살려줘야 한다』

  • 입력 1998년 1월 8일 20시 42분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물적 성장만으로는 안된다. 물적 성장에 상응하는 국민의 의식수준 향상이 뒤따라야 한다.” 쿠즈네츠 교수의 말이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그의 말대로 선진국의 문턱에서 주저앉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숨길 수 없다. ▼ 경제위기 극복 주체는 기업 ▼ 사태가 이렇게 되었는데도 남의 탓만 하고 자신의 몫을 어떻게든 지키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정도의 국민의식 수준으로는 우리가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지금은 누구를 탓하기보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의 붕괴로 연결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절박한 시기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외국 언론이 현재의 사태를 빚은 배경과 관련, 우리 기업들의 책임을 거론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까지 우리 기업을 매도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물론 차입에 의한 외형 불리기나 경영의 투명성 부족 등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러나 기업은 우리 삶의 터전이다. 우리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출을 늘려 외채를 갚아야만 하고 이를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업뿐이다. 특히 중소기업인들은 기업의 실패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데도 사회는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 이제는 국가가 기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국가를 선택하는 시대다. 수년 전 영국에 갔을 때 그곳에 사는 한 동포가 들려준 이야기다. “내가 이곳에서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웠던 것을 느낀 유일한 일은 S전자가 공장 기공식을 할 때 엘리자베스여왕이 테이프 커팅을 한 장면이었습니다.” 영국의 통산장관을 우리의 관리나 국회의원이 만나기는 어려우나 우리 기업의 현지 지사장이 만나기는 훨씬 쉽다고 한다. 관리나 국회의원들은 의례적인 방문이거나 부탁을 하러 온 것일 게고 기업인은 잘하면 자기 나라에서 고용을 창출해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게다. 미국의 정치를 좌우하는 집단도 기업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 갖가지 시장개방 압력을 가하는 뒤에는 반드시 기업인 집단이 있다.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그것이 정치든 경제든 간에 힘이 정의다. 세계 각국이 자신의 힘이 모자라면 블록을 형성해서라도 힘을 가지려 하는 이유가 이를 입증한다. 최근 우리나라를 위시한 동남아의 외환위기는 유럽연합(EU)을 견제하기 위해 이곳에서 지도력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전략중 하나라는 시각도 있다.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우리에겐 ‘노’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이 없다. 국가는 힘이 있어야 한다. 기업의 경쟁력은 곧 국가의 경쟁력이다. 우리도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기업들은 영원히 선진국 기업들의 하청공장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 「네탓만」하는 자세 버려야 ▼ 외국에서 우리나라 대기업의 책임을 지적하는 것은 그 진의가 따로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경영의 투명성 부족과 정경유착 등이지 기업집단에 의한 경쟁력 강화 그 자체는 아니다. 각국이 경쟁적으로 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열심이다. 자고 일어나면 기업 순위가 바뀌는 것이 요즘이다. 기업을 홀대하는 나라는 기업이 그 나라를 떠나게 된다. 규제를 혁파하자는 것은 가장 기업을 경영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자는 것이다. 외국인의 국내기업 취득을 반대할 필요는 없다. 기업은 경영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자가 경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적대적 인수를 가능케 하는 대신 우리 기업에도 자신을 방어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우리 모두 허세와 교만 속에서 살아온 것을 겸허히 반성해야 한다. 네 탓만을 하고 제 몫 찾기만을 고집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강병호(한양대교수 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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