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업계의 비명소리가 높다. 은행들의 수출환어음 매입과 수입신용장 개설 기피로 수출현장 마비상황이 한 달 넘게 지속되고 있다. 정부의 수출지원대책도 마냥 겉돈다. 은행권에 아무리 수출금융 지원을 독려해도 일선창구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최소자기자본비율 8%를 충족해야 하는 은행들로서도 스스로 한계가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달 중순 이후 수출중단사태가 가시화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다.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수출지원대책은 10여가지에 이른다. 그러나 대부분 은행권에 대한 수출금융지원 독려가 고작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기한부 수출신용장 결제를 위한 담보대출 실시와 신용보증기금의 특례보증 등이다. 은행권이 꺼리고 고율의 대출이자로 기업이 외면하는 대책이 실효를 거둘 수 없음은 당연하다. 수출자금지원을 기피하는 은행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엄포나 창구지도를 위한 대책반의 가동 또한 마찬가지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은행들의 수출환어음 매입 촉진을 위해 약 30억달러의 외화를 저리(低利)로 지원키로 하고 국제통화기금(IMF)과 협의를 갖기로 한 것은 고무적이다. 금융기관들의 수출금융 지원을 위해 한국은행을 통해 담보부 수출금융과 수출관련 원자재의 수입지원 조치를 하도록 한 것도 수출업계 자금난 해소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미흡하다. 수출업계의 애로를 타개해 줄 특단의 조치가 함께 취해져야 한다. 산업은행의 수출환어음 담보대출과 수출보험에 든 물품에 대한 자금지원뿐아니라 직접 금융지원방안도 아울러 강구할 필요가 있다. 1,2개 국책은행에 한은특융을 해주고 BIS기준에 관계없이 수출금융을 맡도록 해야 한다.
최근 수출입금융업무 마비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BIS기준 때문이다. 은행이 수출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을 늘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대출여력을 갖도록 하는 길 밖에 없다. 우선 IMF와 합의한 BIS기준의 하향조정을 재협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3월말 심사 때 환차손과 주식평가손을 지난 연말의 갑절인 100%로 올려 반영키로 한 것도 IMF와의 추가협상을 통해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난 연말 간신히 BIS기준을 맞춘 은행도 3월말의 재심사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물론 IMF와의 약속은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경제 회생의 유일한 돌파구인 수출길이 막히고 수출산업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것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 실물경제를 외면한 통화목표는 조정되었지만 추가로 BIS기준 문제도 다시 논의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