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망하면 근로자는 빈손으로 거리에 나앉게 된다. 일터를 잃게 됨은 물론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해 살아갈 길이 막막해지는 게 대부분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실직이 급증해 노동부의 실업급여창구가 붐빈다고 한다. 등산로와 영화관 등에는 고개숙인 실직자의 발길이 줄을 잇고 오갈 데 없는 실직자를 위해 ‘IMF모임터’라는 곳도 등장했다는 보도다.
▼부도가 난 중소기업인과 실직자가 정신적 고통을 못견뎌 자살했다는 우울한 소식도 자주 들린다. 그러나 그동안 수없는 기업이 명멸(明滅)했고 작년부터는 대기업의 연쇄부도사태가 났지만 대기업주가 ‘거지신세’가 됐다거나 죄책감으로 생(生)을 마감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국내외에 챙겨놓은 재산으로 변함없이 잘 살고있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대기업주는 유한(有限)책임이란 말인가.
▼정리해고제 조기도입과 관련, 두 노총이 근로자의 ‘고통분담’이 아니라 ‘고통전담’이라며 반발하는 것도 ‘이유없는 반항’으로만 볼 수는 없다. 마침 한보철강 법정관리인이 정태수(鄭泰守)전한보총회장을 상대로 생소한 ‘사정(査定)재판’을 신청, 손해배상을 받을 계획이라는 뉴스가 눈길을 끈다. 회사부담으로 증여세를 내고 노태우(盧泰愚)씨의 돈을 빌려 회사에 1천5백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정씨는 노씨의 집권 당시 수서택지특혜분양사건으로 징역을 살고 나와 재기한 사람이다. 이번 특혜대출비리사건 복역을 끝낸 뒤에도 화려한 생활을 계속한다면 정의의 여신은 눈이 멀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더구나 그는 지금의 경제위기에 책임이 큰 사람이다. 기업이 망하면 기업주도 망한다는 선례를 꼭 세워야 한다.
〈육정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