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영화「나의 장미빛…」,여자 되고픈 꼬마이야기

  • 입력 1998년 1월 12일 08시 45분


집들이가 열린 날. 일곱살짜리 루도빅이 빨간 드레스에 엄마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나타난다. “어머 예쁘다, 얘” 박수치는 이웃들. 그러나 루도빅이 남자라는 것을 안 순간 분위기는 금방 썰렁해진다. 영화 ‘나의 장미빛 인생’은 자신이 원래 여자로 태어났으나 하느님이 던진 X염색체가 굴뚝에 걸려 떨어지면서 XY염색체만 남는 바람에 남자가 됐다고 믿는 꼬마의 고생담을 그리고 있다. 여자가 돼야 마땅했는데 남자로 태어났으니 루도빅과 세상이 조화로울리 없다. 좋아하는 남자아이 제롬과 결혼식을 올리는 장난을 치다가 제롬의 엄마를 기절시키기도 하고, 큰언니(?)가 초경을 시작한 것을 알고 자신도 생리통을 하게됐다고 좋아하기도 하고. 가장 큰 사건은 학예회때 왕자로 분장한 제롬의 키스를 받기 위해 백설공주 역의 꼬마를 화장실에 가두고 대신 침대에 누워있을 때 일어났다. 입술을 뾰족 내미는 순간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포가 벗겨지고 사람들은 경악한다. 다음 순서는 수난의 연속이다. 이웃들의 진정에 학교를 퇴학당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다니고, 아빠는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루도빅이 밝은 웃음을 되찾은 것은 쫓기듯 이사한 동네에서 왈패같은 여자애를 만나서였다. 계집애가 사내같이 구는 것을 ‘뭐, 그럴수도 있다’고 인정해온 이웃들은 루도빅이 계집애같다는 점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 ‘나의 장미빛 인생’은 세상을 보는 마음의 창을 하나쯤 더 열어주는 영화다. 처음에 루도빅의 가족과 동네사람들은 루도빅이 다른 애들과 ‘다른 것’을 불편해하고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같지 않다고 해서 틀릴 것은 또 뭐있는가. 루도빅은 사회규범과 고정관념, 정상과 비정상에 관한 기존 가치체계 안에 편히 잠들어 있는 우리 영혼의 뒤통수를 갈기러 내려온 일곱살짜리 천사인지도 모른다. 다름의 인정, 눈흘김없는 이웃, 열린 커뮤니케이션이 살맛나는 세상을 만든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벨기에 출신의 감독 알랭 베를리네(35)는 이 영화에서 ‘자기다움’을 지키는 용기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관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를 곧이곧대로 진지하게 표현하는 대신 그는 만화같은 판타지와 크레파스같은 색깔을 활용했다. 루도빅은 여자가 되고 싶을 때면 바비처럼 예쁜 인형과 함께 장미꽃밭 사이를 날아다니는 공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감독의 엉뚱한 상상력과 시적 감수성은 관객마저 장미와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환상속으로 몰아넣는다. 빨갛고 노랗게 머리를 물들이는 10대, 배꼽에 배꼽찌까지 걸고 동성애를 떳떳이 밝히기 시작한 우리 아이들. 어른들이 만든 틀 속에 얌전히 들어앉지 않는다고 ‘세상 말세’를 외칠 것인가. 지난해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돼 화제를 모았고 올해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최우수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라있다. 24일 개봉. 〈김순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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