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그대 그리고…」최불암]「황혼의 터프가이」

  • 입력 1998년 1월 12일 19시 48분


“요즘 미국의 시사주간지 ‘티메(Time)’를 정기구독한 덕분에 부쩍 똑똑해진 것 같아.” 자신감 넘치는 최불암이 어느날 애인 박원숙과 비디오방을 찾아 야하기로 소문난 ‘젖소부인 바람났네’‘만두부인 속터졌네’를 동시상영으로 봤다. “어머 왜 젖소부인이죠.” “음, 그 배우가 ‘글래머’라 상징적으로 표현한 거요.” “그럼 만두는 왜….” “….” 애인 앞에서 말문이 막힌 최불암은 불같이 화를 내며 샌드백을 두드렸다. 다음날 그는 곧바로 티메사에 무려 1만통의 항의전보를 쳤다. 발신 ‘불암 초이’. 내용 ‘항―의―전―보’ ‘항―의―전―보’…. 출연료도 없이 본의 아니게 수백편째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활약중인 탤런트 최불암(57).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꽤 많다. ‘한국적 아버지상’ ‘한국인의 얼굴’은 그중 묵은 것들. 여기에 10년 가깝게 유행하고 있는 ‘최불암 시리즈’와 국회의원의 이미지가 섞인다. 60줄을 내다보는 그가 MBC 주말극 ‘그대 그리고 나’에서 ‘황혼의 터프가이’로 나와 이정재 송승헌 등 ‘젊은 오빠’들과 겨루고 있다. 주부시청자들 사이에 ‘인기 캡’으로 고개숙인 동네 남편들을 위협한다. “제대로 된 ‘수컷 냄새’ 때문이죠. 남자들은 가진 게 없으면 기죽지만 내가 연기하는 재천은 달라요. 샌드백을 두드리며 힘을 자랑하다 여자 앞에서는 시를 읊조리는 로맨티스트로 변하죠.” 극중 뱃사람 재천은 술꾼에다 예절과는 담을 싼 무뢰한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며느리(최진실)의 말 한마디에 화를 풀고 막내아들의 생모(이경진)를 본 뒤 “에이 개같은 자식”이라며 자책하는 따뜻한 심성이 시청자들을 사로잡는다. 67년 KBS ‘수양대군’이후 연기인생 31년째. 사람들은 ‘최불암’하면 ‘전원일기’의 김회장을 떠올리면서도 다른 드라마를 볼 때는 그 사실을 새까맣게 잊어버린다. “연기력은 뭘…. 연기자는 만족이란 게 없습니다. 매일 성장하는 게 연기라 화면을 보면 화가 나요. 농군이면 농군, 어부면 어부의 체취라도 전달해야죠.” 최불암시리즈의 주인공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어린애같이 좋아한다. “각박한 세상에 곧 멸종될 것 같은 김회장의 순박한 캐릭터가 어리숙한 최불암 시리즈를 낳은 것 같다”면서 “광대의 한 사람으로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으로 한때 ‘정치 외도’를 했던 그는 최근 영화 ‘라쇼몽(羅生門)’의 주인공으로 ‘일본인의 얼굴’로 불렸던 미후네 도시로의 죽음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지난해 낙선한 뒤 어떤 분이 ‘최의원 일부러 안찍었어. 당신은 드라마로 더 큰 정치해야지’하더군요. 내가 죽을 때 잠시 발 담갔던 정치때문에 기회주의자로 불리지는 않을까 걱정됩니다. 이제 남은 연기인생은 한국인의 얼굴을 만드는 데 몰두할 작정입니다.” 〈김갑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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