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이란 검약의 대명사다. 낭비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과 같이 생각한다. 폐지 등 자원의 재활용률도 대단히 높다. 자원이 무한정하지 않다는 인식과 환경보호 정신 때문이다.》
미국 뉴욕의 맨해튼 거리. 이른 아침 대형 트럭이 건물 앞 길가에 놓여있는 폐지봉투를 수거해 간다.
봉투에는 신문지 헌책 등 각종 폐지가 차곡차곡 담겨있다. 폐지는 재생종이로 된 누런 봉투에 담겨 있어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주택가도 마찬가지. 뉴저지주 크래스킬 지역은 매달 두차례씩 폐지를 수거해 간다. 주민 로버트 밀러는 “다시 쓸 수 있는데 버리면 아깝지요”라고 말한다. 해당 요일 아침에는 폐지봉투가 길가에 늘어서 있어 수거일을 몰랐던 사람도 금방 알 수 있다.
워싱턴 근교인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카운티의 모습도 똑같다. 이곳에서는 매주 화요일 아침에 폐지를 수거한다. 이곳 주민 스미스할아버지는 동네감독관처럼 행세한다. 종이봉투가 잘 정돈되지 않아 폐지가 바람에 날리면 집주인을 불러내 나무란다.
재활용자원 수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생활문화로 정착되어 있다. 지방행정 관청은 폐지 등 재활용품 수거를 쉽게 하기 위해 재활용품과 쓰레기 수거일을 요일별로 표시한 예쁘장한 달력을 만들어 집집마다 나누어 준다. 주민들은 이 달력을 냉장고에 붙여놓고 해당 요일에 해당 쓰레기만 내놓는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맨해튼 등 대도시 지역의 신문지 등 폐지는 65%가 회수된다. 그러나 주택가의 회수율은 무려 87∼99%에 이른다. 전국적인 회수량은 95년 한해 동안 무려 3천6백만t. 이중 28% 가량인 1천만t을 아시아 유럽 등지에 수출했다. 한국의 폐지회수량은 95년 3백66만t이었으며 96년에 수입한 폐지는 1백47만t이나 됐다.
미국 제지업계는 2000년까지 모든 종이의 재활용률을 5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96년말 현재 종이재활용률은 44.8%. 특히 골판지는 70%가 폐지로 만든 재생종이다. 신문용지도 재활용지가 94년 54%에서 96년에는 62.4%로 높아졌다. 고품질 일반용지의 경우도 93년 29.3%에서 95년 41%로 재활용률이 껑충 뛰었다.
미국의 전체 폐지 재활용률은 45%. 한국의 53.2%보다는 낮다. 그러나 원목자원이 풍부하고 광활한 국토 등 수거의 어려움을 감안하면 재활용률은 대단히 높음을 알 수 있다.
폐지수거비용이 많이 들어 상대적으로 재생용지의 경제성이 떨어짐에도 재활용률이 높아지는 것은 자원낭비를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려는 국민들의 의식 때문이다.
전국 산림 및 제지협회의 핸슨 무어회장은 “2000년까지 재활용률 50%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며 “그러나 모두 함께 노력하면 못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폐지재활용을 위해 미국연방정부는 재생용지의 사용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재생용지의 사용이 보편화되어야 자원의 재활용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취임하던 해인 93년 10월 연방환경보호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악관 직속으로 연방환경처(FEE)를 설립, 재활용업무를 총괄토록 했다. 대통령이 앞장서 자원재활용의 중요성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모습이다. FEE는 각 부처 차관보들과 제지업계 대표들이 참석하는 ‘종이 정상회담’도 두차례나 열었다.
미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일선 행정기관은 재활용 문의전화(Recycling Hotline)를 24시간 운영하면서 폐지 폐유 폐건전지 플라스틱 유리병 알루미늄캔 등 각종 재활용 대상품에 대해 상담하고 있다.
<뉴욕·워싱턴=이규민·홍은택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