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제부도]갈라진 바닷물이 하나되듯…

  • 입력 1998년 1월 15일 20시 07분


“엄마 엄마! 이쪽도 바다, 저쪽도 바다야.” 엄마 아빠의 ‘저기압’에 주눅든 탓일까. 오전10시에 서울을 떠나 2시간 가까이 차를 달리는 동안 평소답지 않게 얌전했던 네살배기 수현이의 말문이 터진 것은 차가 제부도로 가는 바닷길에 들어선 때부터. “여기서 애들 사진 찍어주면 잘 나오겠네.” 기다렸다는듯 아내의 말문도 열리기 시작한다. 하루 두번 바닷물이 갈라져 육지와 연결되는 섬 제부도(경기 화성군 서신면 제부리). 바닷물 사이로 쭉 뻗은 2㎞ 포장도로 중간에 차를 세운 이홍기(李洪基·33·자영업)씨. 카메라 앵글 속의 아내 송정희씨(33)와 수현 아현 두딸을 향해 셔터를 누르다 문득 눈부신 햇살에 고개를 든다. 한낮의 햇살을 받아 뒤척이는 겨울 바다의 은빛 비늘, 둥둥 떠다니는 듯한 서해의 작고 둥근 섬들과 수평선…. 낮12시 제부도를 한바퀴 도는 일주 도로에 진입. 포장도로는 곧 끝나고 조금 질척한 길을 따라 2분 가량 가다보니 ‘비경’이라는 표현이 과장되지 않을 매바위. 차를 완전히 주차하기도 전에 아내와 아이들은 넓은 갯벌 끝 자락에 솟아 있는 매바위를 향해 뛰쳐나간다. 굵은 모래와 돌멩이로 이뤄진 갯벌 곳곳엔 굴을 따려는 관광객들의 굽은 등이 달팽이처럼 움직이고 곳곳에 팔짱을 깊게 낀 젊은(혹은 나이든) 연인들. “저 사람들 부부 같진 않은데. 여자가 너무 젊어, 그지?” 엉뚱한 아내의 질문에 이씨는 ‘이 무드에서 그런 게 왜 궁금하냐’고 핀잔을 주려다 빙그레 웃으며 아내의 손을 이끈다. “자, 예술사진 찍어줄테니까 해를 등지고 멋있게 서봐.” 오늘(13일) 바닷길이 열려 있는 시간은 오전8시∼오후3시, 밤9시∼오전3시 두차례. 오후3시 이전에 다시 내륙으로 나가려면 좀 서둘러야 한다. 일주도로를 따라 백사장, 횟집거리를 거쳐 차로 15분 가량을 더 달리니 선창가. 즐비한 포장마차 중 한곳에 들어가 이곳의 명물이라는 ‘굴구이’를 시켰다. 조개탄 위에 놓인 석쇠에서 석굴 맛살 소라 등이 툭툭 소리를 내며 구워진다. 뜨거워 견디지 못한 조개가 입을 쫙 벌리자 수현이는 “불쌍하다”고 난리다. 소주 안주론 최고일 것 같지만 운전 때문에 참고 있는 이씨 옆에서 혼자 소주잔을 홀짝이던 아내는 “수현이도 한잔 마셔볼래”하며 주책없다. “술은 아빠들만 마시는 거야.” 역시 똑똑한 ‘딸내미’. 다시 바닷길을 따라 육지로 돌아오니 오후3시. 허름한 비닐하우스 식당에서 바지락 칼국수를 들이켜고 해수탕에 들어가 몸을 녹였다. 어둑어둑해진 서울로 돌아가는 길. 멀어지는 바다가 아쉬운지 아내가 한마디 던진다. “모세처럼 한순간에 쫙 갈라지는 건 아니네,뭐.” “어이구, 그건 영화에나 나오는 얘기지.” 〈제부도〓이기홍·이승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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