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실내온도를 낮추는 바람에 두꺼운 내의와 겉옷을 껴입고 일을 하는 사무실이 많다. 그런가 하면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창문까지 열어놓은 채 한여름처럼 지내는 곳도 있어 눈총을 받고 있다. 환경운동연합은 서울의 대형건물 실내온도를 측정한 결과 여의도의 국회의원회관이 적정온도인 섭씨18∼20도를 웃도는 평균 23.5도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일부 관공서와당사, 호텔백화점도 20도를 넘는 곳이 상당수인 것으로 조사됐다.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대다수 직장과 가정에서는 외화유출의 ‘주범’인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내고 있다. 정부는 ‘에너지 10% 절약운동’을 벌이자는 구호 아래 각종 대책을 내놓았다. 밤 12시 이후 네온사인과 전광판을 이용한 옥외광고를 금지하고 가로등 격등제 실시, 차량 10부제 운행 권장, 골프장 및 골프연습장의 야간조명을 금지한 것 등이다. 아파트마다 난방과 온수 제한공급, 엘리베이터 홀짝운행 등을 실천하고 각 가정에서는 전기 수돗물 등을 절약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 결과 전력사용증가율이 12년만에 최저를 기록했다는 반가운 통계도 나오고 있다.
이런 마당에 국민의 혈세로 운영하는 의원회관이 ‘나 몰라라’는 태도에 앞장서고 있으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국회의원은 ‘높으신 양반’이기 때문에 그런 특권을 누려야 한다는 말인가. 나라가 어려운 때일수록 국회의원을 포함한 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국민의 힘을 한군데로 모을 수 있다. 지도층은 구호만 외치고 국민에게만 실천을 요구한다면 무슨 운동이든지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96년 한해 에너지 수입액은 무려 2백42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연간 수입총액의 약 16%에 해당한다. 85년 이후 국내총생산(GDP)의 증가율은 연평균 8.9%인데 비해 에너지소비 증가율은 10.3%로 세계 5위를 차지했다. 현재 세계 11위의 에너지 소비대국이다. 최근 무역수지 적자는 주로 에너지 다소비에 기인하고 있다. 에너지 다소비형 구조가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에너지를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우리 경제를 살리는 길은 현재로선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방에 쓰는 기름과 전기는 외화덩어리인 셈이다. 실내온도를 1도 낮추면 약 10%의 연료비를 절약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연간 20억달러 이상을 절약할 수 있으며 이는 원전 1기를 건설할 수 있는 막대한 돈이다. 의원회관의 실내온도에 분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