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15)

  • 입력 1998년 1월 17일 07시 35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83〉 금단의 방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여태껏 맡아보지 못한 향기가 코를 찔렀습니다. 그 향기가 얼마나 강렬했던지 나는 흡사 술에 취한 것처럼 감각이 마비되고 정신이 몽롱해졌습니다. 그러던 끝에 나는 마침내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한 시간 쯤 지난 뒤에서야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나는 어느 방 안에 있었습니다. 바닥에는 사프란 꽃들이 깔려 있고, 온갖 장식이 달린 금촛대에는 휘황하게 촛불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또, 순금으로 된 램프에도 불이 켜져 있었는데, 그 기름은 값비싼 것으로서 사향이나 용연향 향기가 풍겼습니다. 그 방에는 또한 쟁반만한 향로가 두 개 놓여 있었는데, 노회나 혼합 향료나 용연향이 향기 높은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방 안에는 온통 그윽한 향기로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내 시선을 끈 것은 칠흑같이 새까만 준마였습니다. 말의 잔등에는 황금으로 만든 안장이 얹혀 있고, 입에는 은으로 만든 재갈이 물려져 있었습니다. 그 말 앞에는 두개의 구유가 있었는데, 그것들은 투명한 수정을 깎아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두 개의 수정 구유 중 하나에는 껍질을 깐 깨가 들어 있고, 다른 하나에는 사향 향기가 나는 장미수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멋진 말을 보자 나는 이상하게 여겨 혼자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정말이지 세상의 어떤 군주도 이런 훌륭한 말을 갖고 있지는 못할 거야. 이 말한테는 틀림없이 무슨 비밀이 있을 거야.” 이렇게 말한 나는 말을 궁전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탔습니다. 그러나 말은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발뒤꿈치로 배를 찼습니다. 그래도 말은 움직이려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나는 고삐를 채찍 삼아 힘껏 후려갈겼습니다. 내가 채찍질을 하자 말은 갑자기 귀청이 찢어지는 소리로 울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앞발을 쳐들어 허공에 솟아오르더니 양 어깨에서부터 활짝 날개를 펼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오, 이럴 수가! 그러고보니 이 말은 예사 말이 아니군!” 말이 날개를 펼치는 걸 보고 나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내가 이렇게 소리치고 있을 때 말은 크게 날갯짓을 하더니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얼마나 높이 날아올랐던지 저 아래 보이는 궁전은 깨알같이 작게 보였습니다. 그렇게 높이 날아오른 말은 힘차게 날개를 쳐 어딘가로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한 시간이나 날아갔을까, 마침내 말은 지상으로 내려가더니 어느 지붕 위에 내려섰습니다. 그런데 말은 그 지붕 위로 내려서면서 나를 내동댕이치며 꼬리를 쳐 내 얼굴을 호되게 후려갈겼습니다. 어찌나 세게 후려갈겼던지 내 왼쪽 눈에서는 눈알이 튀어나와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말은 그냥 날아가버렸습니다. 눈알이 빠져버린 왼쪽 눈을 움켜잡은 채 나는 지붕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지붕에서 내려와보니 열 명의 애꾸눈이 젊은이들이 푸른 침대 위에 앉아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고보니 나는 몇 달 전에 떠난 바 있는 열 명의 애꾸눈이 젊은이들이 사는 구리 대문의 궁전으로 되돌아온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나 또한 애꾸눈이가 되어서 말입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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