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평안북도 하갑에 지하 핵무기시설을 건설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국 언론 보도는 충격적이다. 북한의 핵문제는 94년 북―미(北―美)간 제네바 핵합의 이후 일단 해결되고 있는 것으로 믿어 온 터여서 놀라움은 더욱 크다. 아직 미국의 관계기관이나 국제기구에서는 사실 여부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보도는 지하시설의 위치와 건물 구성뿐만 아니라 이 시설이 전쟁발발시 미국의 최초 공격목표가 될 것이라고 설명하는 등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핵시설에 대한 의혹을 해소할 1차적 책임은 당사자인 북한측에 있다. 북한은 불과 4년 전 제네바에서 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핵활동 동결과 핵투명성 보장을 약속했다. 지금 북한의 대외관계는 사실상 그 약속을 바탕으로 설정, 진행되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핵활동 동결이나 핵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활동이나 대북(對北)경제지원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를 비롯한 외교접촉 모두가 당장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북한은 우선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이번 보도내용에 대해 솔직히 해명해야 한다.
사실이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혹 은밀하게 핵시설을 건설중이었다면 하루라도 빨리 중단하는 것이 북한 스스로를 위하는 길이다. 공개적으로 중단 선언을 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철저한 검증을 수용한다면 비록 일시적으로 약속 위반에 대한 비난은 받겠지만 큰 상처없이 국제적인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 사실을 숨기려 들거나 변명에 급급하면 갓 출범한 김정일정권은 국제사회의 불신 심화로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다. 핵시설은 아무리 깊숙이 감춰놓아도 인공위성 등 첨단 장비와 기술로 언제나 탐지가 가능하다.
북한의 핵활동 동결과 핵투명성 보장 약속을 이끌어낸 미국이나 이 약속을 지키도록 감시해야 할 IAEA도 이번 핵의혹을 철저히 규명할 책임이 있다. 지금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위해 갖가지 외교적 수단을 강구중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미국은 평양측에 핵의혹 해명을 어느 나라보다도 강력히 촉구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다. 이번 보도의 근거도 미국 국방정보국 비밀문서라고 한다. 클린턴행정부는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북한의 핵의혹에 대해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모든 외교력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핵의혹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한 4자회담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의 평화장치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이번의 핵의혹이 또다시 한반도의 안정에 장애가 돼서는 절대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