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벌의 언론소유 포기

  • 입력 1998년 1월 19일 20시 58분


현대그룹이 기업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그룹 소유 문화일보 경영에서 완전히 손떼기로 한 것은 그동안 우리 언론의 해묵은 현안이었던 재벌언론 개혁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한 결단이다. 재벌의 경영정상화를 위해서나 언론의 기능정상화를 위해서 재벌의 언론소유는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벌소유 언론이 흔히 재벌의 권익보호와 영리추구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재벌이데올로기를 옹호 전파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 언론현장에서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돼왔다. 재벌언론의 개혁은 이러한 굴레로부터 언론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다. 선진 외국이 각종 법적 사회적 규제를 통해 재벌의 언론참여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도 언론보도의 공정성과 국민의 알 권리를 재벌의 영향력으로부터 확실히 차단하기 위한 조치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신문도 상품이며 신문사도 영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기업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신문은 물건을 팔아서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라 정보와 견해라는 정신적 상품을 팔아서 존재를 확인하는 기업이다. 따라서 재벌과 언론은 기본적으로 결합할 수 없는 각각의 고유영역을 가진 독립적 존재다. 재벌의 언론소유는 이러한 언론을 재벌의 논리로 길들이고 지배하려 한다는 점에서 언론 발전을 결정적으로 저해한다. 재벌언론이 모(母)기업의 무제한적 자금지원에 힘입어 언론시장을 불법적으로 교란시킨다는 점도 그동안 언론현장에서 충분히 입증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몇차례 시정을 촉구하기도 했지만 재벌언론은 부당 내부거래를 통한 재벌의 광고 자금지원을 등에 업고 무차별 덤핑, 무가지(無價紙) 및 경품 살포, 사원판매 등으로 신문 유통질서를 심하게 어지럽혔다. 더욱이 재벌언론은 과도한 시설투자와 증면 등으로 독립적인 언론사들을 출혈경쟁에 끌어들임으로써 언론사의 경영을 악화시키고 부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권언(權言)유착을 심화시켜왔다. 재벌언론의 이러한 폐해는 이제 시정돼야 마땅하다. 언론개혁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며 개혁은 재벌언론의 자체정리에서부터 시작해야 옳다. 현대그룹의 문화일보 경영포기는 그런 점에서 신선하다. 이러한 결단이 언론소유에 집착하는 다른 재벌에도 충격을 주기를 기대한다. 언론의 출혈경영이 재벌 자체의 정상경영에도 심대한 주름을 주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드러났다. 진정한 공익을 위한 경쟁, 뉴스상품의 질(質)을 위한 경쟁을 통해 언론이 언론답게 발전하기 위해서도 재벌의 언론 거느리기는 차제에 말끔히 정리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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