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수형/『빨리빨리』 김현철 재판

  • 입력 1998년 1월 21일 20시 15분


20일 시작된 김현철(金賢哲)씨의 항소심 담당 재판부는 추가 증인신청 등이 없으면 다음달 3일 결심공판을 진행한 뒤 17일이나 24일쯤 판결을 선고하겠다는 입장이다. “1심에서 충분한 증거조사와 신문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재판부가 내세운 신속재판의 이유다. 그러나 실제로는 2월말 또는 3월초 법원 정기인사에서 자리를 옮길 예정인 재판부 소속 판사들이 김씨 사건을 후임재판부에 떠넘기지 않겠다는 의도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이유로 우리 사회 부패구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김씨 사건을 신속재판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이런 사건은 1심에서 신문이 이뤄진 증인이라도 필요하면 직권으로 다시 부르고 의심스러운 부분은 철저히 조사한 뒤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특히 김씨에 대한 신속재판은 재판부가 김씨를 보석으로 석방하면서 “충분한 심리를 위해 불구속상태로 재판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과도 배치한다. 인사이동 때문에 서둘러 재판을 마치겠다는 것은 사법행정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는 지적을 면하기도 어렵다. 일본에서는 중요사건의 경우 재판부가 인사이동을 거부하면서까지 수년간 심리를 계속하기도 한다. 더욱이 김씨는 항소심을 앞두고 법원의 전관 특별관리제도를 교묘하게 이용, 판사 출신 변호사를 추가로 선임함으로써 항소심 재판 재판부를 의도적으로 선택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런 마당에 현 재판부가 인사이동을 앞두고 “꼭 우리가 선고하겠다”고 고집한다면, 현철씨의 불순한 의도에 재판부가 ‘화답’하는 것이 아니냐는 또다른 의혹을 받을 수도 있다. 신속한 재판이 중요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헌법이 규정한 ‘신속한 재판’은 충분하고 면밀한 심리를 전제로 한 것이어야 한다. 이수형<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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