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그곳에 가고싶다]경북 해안도로변 백암

  • 입력 1998년 1월 21일 20시 15분


그나마 경기가 괜찮았던 몇해 전. 친구와 함께 경북 백암 가는 길. 7번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진 그 길은 한폭의 수묵화였다. 눈부신 달빛아래 간간이 보이는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 멀리서 어슴푸레하게 빛나는 오징어잡이배의 등불. 새벽녘 백암에 도착한 우리는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주변 명소부터 찾았다. 백암 근처에는 온천뿐만 아니라 경치가 빼어난 곳이 많았다. 물 맑고 산이 깊기로 유명한 불영계곡, 천년고찰 불영사, 관동팔경의 하나인 월송정과 망양정, 추정나이가 2억5천만년이나 되는 4백70m 길이의 성유굴 등. 교통이 불편한 곳이라 그런지 모두 사람의 손때가 덜타 태고적 순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해질 무렵 우리는 인근 구산해수욕장을 찾았다. 피서철이 끝났을 때라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같이 간 친구가 옷을 훌렁 벗어던지고 ‘천연 수영복’차림으로 물에 풍덩 뛰어들었다. 때마침 수영복을 안가지고 간 게 잘된 것이었을까. 이른바 ‘원시수영’. 정말 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그 눈물없는 어린시절’로 돌아가 개구쟁이들처럼 맘껏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하기야 그 친구도 이제는 와이셔츠 깃을 세우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세파에 찌들어가고 있지만. 올겨울에도 솜같은 눈이 자주 내린다. IMF한파에 주눅든 월급쟁이들의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이럴 땐 삼겹살에 소주 한 잔 걸치는 것이 만병통치약이란다. 하지만 나는 백암이 그리워진다. 허전한 오후엔 누군가와 함께 훌쩍 떠나고 싶다. 7번 국도를 따라가며 그에게 들려주고 싶다. 그 바닷가 사연들을…. 임재웅 (LG카드 영업기획팀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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