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은 그룹 구조조정 발표에서 현대나 LG그룹보다 한 수 위였던 것같다.
이건희(李健熙)삼성그룹회장은 21일 부동산 등 개인재산 1천3백80억원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연말까지 부동산이 팔리지 않으면 현물로라도 내놓겠다고 약속한 것은 일단 파장을 일으켰다.
현대와 LG그룹의 구조조정안 발표와 그 반응을 지켜본 뒤 구조조정 수위를 결정한 전략은 역시 삼성다운 것이었다. 총수의 사재출자에 소극적인 두 그룹의 태도에 김대중(金大中) 차기대통령이 크게 화를 낸 뒤의 대응이었다.
92년 대선에서 “3조원의 재산을 국민경제를 위해 쓰겠다”고 공약한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명예회장은 선거가 끝난 뒤 사재가 한푼도 없다며 유야무야 해버렸다.
삼성그룹은 김차기대통령이 13일 회동에서 “기업이 악성루머로 어려움을 겪어선 안된다”며 이회장의 등을 두드려 준데 대한 보답이라도 하듯 이번에 상당히 애를 쓴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사재 출자 ‘깜짝쇼’에 가려 정작 재벌 구조개혁의 알맹이인 주력업종 선정이나 자동차사업 처리문제는 실종하고 말았다.
삼성그룹은 아직 주력업종을 선정하지 못해 다시 외국 전문평가기관의 평가를 받은 뒤 4월까지 결론을 짓겠다고 밝혔다. 삼성이 다시 결론을 유보했다는 것은 현재의 문어발 사업에 대한 집착이 그만큼 강한 것이라고 인식될 수도 있다. 구조조정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는 태도도 설득력이 약하다.
사재 출자가 각 경제주체의 고통분담을 이끌어내기 위한 ‘곁가지’라면 주력업종을 중심으로 한 사업구조조정은 경제위기를 넘기기 위해 근본적으로 필요한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사재가 없다’며 고통분담을 외면하는 재벌도 문제지만 사재 출자로로 생색을 내며 구조개혁 부분은 적당히 넘어가려는 태도도 진정한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이영이<경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