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가 한일(韓日)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은 크게 유감이다. 일본정부의 각성을 거듭 촉구해 온 우리로서는 모욕감과 배신감마저 느끼면서 이번의 독단적인 행동이 두나라의 기존 우호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65년 한일국교정상화와 함께 체결된 이 협정을 일본이 지금 이 시점에서 파기한 것은 어떤 변명을 해도 납득할 수 없다. 잘못한 선택이다.
두나라는 96년부터 10차례의 협상을 통해 배타적경제수역(EEZ)도입과 독도주변 잠정수역설정에 합의했고 실무선에서는 그에 따른 협정개정 마무리 교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그러나 자민당내의 보수파나 수산업계의 압력을 이유로 교섭 중단은 물론 급기야 협정 자체마저 파기해버렸다. 지금의 하시모토(橋本)정권은 지지율이 출범 이후 최저로 떨어져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계산된 도발을 하고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우방과의 외교현안을 국내 정파간의 갈등에 이용하려 한다면 곤란하다.
더구나 지금 우리는 정권교체기에다 심각한 금융위기까지 겹쳐 있다. 일본측은 이제 다시 협상을 시작해 1년안에 마무리지으면 된다고 하나 누가 보아도 떳떳하지 못한 자세다. 지금까지 해온 협상을 팽개치고 재협상 운운 하는 것은 우리의 어려운 사정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속내를 보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80년부터 시행해온 한일 조업자율규제 합의의 정지를 즉각 일본에 통보한 것은 불가피한 조치다. 일본측의 비우호적인 처사에 적극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조업자율규제가 정지되면 출어어선 척수, 조업수역, 조업기간 제한이 모두 풀려 마구잡이 어로활동이 이루어 질 가능성이 있다. 일본 당국과 우리 어선간의 마찰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일본측에 있다.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은 일본이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의 어업분쟁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리수를 둔 일본측의 태도가 무엇보다 관건이다. 김대중(金大中)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한국의 기본 입장은 더이상 변할 것이 없다. 또 지금의 격앙된 국민 감정도 쉽게 가라앉을 수 없는 분위기다.
일본은 한국과의 선린관계유지에 관심이 있다면 이제라도 국제관례를 존중하고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 생각을 해야한다. 이웃나라의 불행을 자국이익에 활용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일정한 냉각기를 갖는 것은 어쩔 수 없겠으나 교섭 재개의 분위기를 조성할 책임 역시 일차적으로 일본측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