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③/민들레학교]『공동체 삶 배웁니다』

  • 입력 1998년 1월 25일 20시 29분


“혜원아, 이리 와 봐. 굴이야.” “야 맛있겠다. 어디 한 번 먹어보자.” 수현(8)이는 바닷물이 쓸고 지나간 갯바위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생굴에서 손가락으로 알맹이를 끄집어낸다. 그리고는 하루만에 친해진 혜원(7)이의 입에 쏙 넣어준다. 민들레학교 겨울캠프가 열리고 있는 충남 서산군 간월도의 7일 아침 풍경은 수채화같다. 초등학생 10여명이 모두 갯바위 앞에 둘러앉아 굴이랑 홍합이랑 따먹는 모양이 신선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전날 오후 조용한 이곳 바닷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아이들은 도시에서 자란 티를 그대로 드러냈다. 바닷가에서 굴을 주워 그 자리에서 속을 발라먹는 동네 사람들을 ‘이상한 사람’처럼 바라보았다. 눈살을 찌푸리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 하루도 안돼 생굴 맛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민들레학교는 93년 대구지역 초등학교 교사들이 모여 만들었다. 그해 여름 전교조 대구초등지회의 참교육캠프에 참가한 교사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꿈꾸는 학교를 세워 스스로 운영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운동장도 학생도 없이 학교부터 만들었다. 민들레교사들은 대구교대생들의 도움으로 대구교대 동아리방 등을 전전하며 바람직한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토론하고 고민했다. 교사들이 모은 돈으로 작은 모임공간을 겨우 마련한 것이 97년 1월이었다. 지금은 초등학교 교사 15명과 대구교대생 20여명이 민들레학교를 이끌고 있다. ‘자연 속에서 자유와 자치를 누리고 공동체적 삶의 의미를 배우는 것.’ 민들레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정신이다. 그해부터 방학 때마다 아이들을 모아 들로 산으로 다녔다. 그냥 놀았다. 강물에 풍덩 몸을 담가도 보고 가파른 산꼭대기를 오르내리며 땀을 뻘뻘 흘렸다. 맨발로 갯벌에 들어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도 보았다. 농장을 방문해 씨앗을 뿌린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신기하고 즐겁기만 한 것들 뿐이었다. 자연을 아끼고 생명을 소중히 하는 마음이 저절로 자라나는 것 같았다. 겨울캠프의 주제는 ‘자치와 겨울 느끼기’‘겨울시골과 우리들’. 여름캠프의 주제는 ‘산 들 물 풀 흙 바람 생명을 느끼자’‘자연과 자유’…. 흙을 만지고 느끼고 바다를 바라보며 자연과 하나되고 또래들과 마음껏 어울리면 그것으로 좋다. 그러기를 5년. 여름과 겨울방학을 이용해 9번의 민들레학교가 열리는 동안 이곳을 거쳐간 아이들만도 6백명이 넘었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지 않던가. 입에서 입으로 번진 소문은 이제는 ‘민들레캠프’란 이름만으로도 참가 지원자가 줄을 선다. 이번 겨울캠프에도 85명이 참가했다. 서울은 물론 부산 대구 대전 등 그야말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골고루도 모였다. 아이들을 7개 모둠(그룹)으로 나누고 각 모둠에 교사 한명과 대학생 서너명씩을 붙여 부여 변산 등지로 떠났다. 일정은 3박4일. 서산 간월도에는 아이들 17명과 대구 월촌초등학교 이춘우(李春雨·35)교사, 대학생 4명으로 구성된 모둠 ‘겨울 들의 사냥’이 왔다. 모둠 이름은 죄다 아이들이 스스로 지은 것. 간월도에 오는 동안 천안과 아산 홍성을 거쳤다. 민속마을도 둘러보고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선생의 집도 찾아봤다. 무엇보다 아이들 눈을 사로잡은 것은 홍성의 우시장. 새벽 3시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찾은 우시장에서 만난 그많은 소들.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소를 바라보며 아이들은 저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밤이면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어깨동무를 한 채 노래도 부르고 별을 보며 학교에서 배운 별자리를 찾았다. 아이들의 표정은 여간 진지하지 않다. 1학년 동생부터 6학년 언니까지, 나이도 다르고 말씨도 다르고 성격도 제각각인 아이들. 처음 만나는 아이들이었지만 금방 친구가 되는 것은 아이들의 또다른 특기. 첫 날 차안에서부터 친구가 돼버렸다. 제손으로 만든 군밤과 군고구마를 나눠 먹는 방 한구석에는 바닷물에 젖은 옷들이 널려있다. 선생님의 자라는 채근에도 이불 속에서 도란도란 얘기하는 소리가 새벽까지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아이들이 자연을 배우고 함께 사는 법을 깨치고 있는 사이에 바닷물이 빠져나간 간월도에는 아이들을 기다리는듯 갯벌이 펼쳐지고 있었다. 〈서산〓윤종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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