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청동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최근 낯선 방문객이 찾아들었다.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시인 최영미씨.
방문사유는 탄원서 제출. ‘남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사건으로 13년형을 선고받고 대구교도소에서 6년째 복역중인 황인욱(黃仁郁·32)씨의 석방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출신인 최씨가 같은 학과 후배인 황씨의 석방을 위해 전달한 탄원서에는 최씨 외에도 학과 교수 및 동문 2백15명의 서명이 들어있었다.
황씨의 지도교수였던 배영수교수가 동료교수들과 함께 작성한 탄원서에는 대학원에 재학중이던 황씨의 구속이 몰고 온 충격과 애제자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다.
황씨가 ‘나는 왜 주사파가 되었고 또 이제는 왜 주체사상의 환상에서 벗어났는가’라는 주제의 반성문을 제출하는 등 사상적 전향과 함께 학업에 전념할 뜻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도 담겨있었다.
이들은 특히 아직 불모지인 아프리카사를 개척하고자 했던 황씨의 향학열이 꺾인 것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황씨가 구속될 당시부터 석방운동을 시작했던 이들은 지난해 8월 최씨를 주축으로 후원모임을 만들었다. 탄원서 작성과 함께 황씨의 여섯살난 딸을 돕기 위한 일일주점도 열었다.
황씨를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는 90년대 학번 후배들도 발벗고 나섰고 동양사학과와 국사학과 등 인문대 ‘이웃학과’의 호응도 뒤따랐다. 황씨의 은사로 주핀란드대사로 나가있는 이인호대사가 현직대사의 어려운 입장에도 불구, 서명을 보내와 힘을 보태주기도 했다.
“이제 시대의 비극이 낳은 사건으로 중단된 역사학도의 길을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3일 언론에 시인 박노해씨와 소설가 황석영씨 등에 대한 인수위측의 사면방침이 보도된 것을 본 최씨의 기대섞인 바람이다.
〈김경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