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논의가 표면화했다. 중앙선관위는 현행 소선거구제를 폐지하는 대신 각 정당의 시도별 후보자 명부를 놓고 유권자들이 정당을 선택해 투표하면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토록 하자는 선거법 개정의견을 냈다. 유럽국가들의 제도를 참고한 혁신적 제안이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고비용 정치구조를 타파하고 정책대결의 선거문화를 정착시키며 정당의 지역편중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 아울러 과두적(寡頭的) 보스정치를 청산하고 신진세력의 정치진입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 선관위가 제안한 시도별 정당명부제는 그런 목표에 상당 부분 부합하지만 일부 역행(逆行)의 우려도 있다.
정당명부제는 고비용 정치구조의 주요인으로 지목돼온 후보자 개인별 선거운동과 정당의 지구당 운영 필요성을 낮춰 ‘돈 정치’ 풍토를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시도별 TV토론회 등 미디어선거를 총선에도 본격 도입해 선거비용을 줄이고 연고(緣故)주의 투표행태를 정당본위 정책중심으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소선거구제의 최대 폐단으로 지적돼온 정당의 지역별 ‘싹쓸이’를 완화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앙당이 후보자를 선정하고 순위까지 매기는 ‘구속식 명부제’는 보스정치를 오히려 강화시킬 소지가 많다. 그렇게 되면 ‘아래로부터의 공천’과 신인의 정계진출이 어려워지고 유권자와 후보자의 거리가 더욱 멀어져 ‘유권자 소외’가 심화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정당간 정책차이가 별로 없고 무원칙한 이합집산이 횡행하는 등 풀뿌리 정당정치가 미숙한 우리 현실에서 이 제도가 얼마만큼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도 만만치 않다.
고비용 정치구조와 지역당 현상을 타파하고 정책경쟁의 선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선관위 의견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만하다. 다만 부작용 소지와 정당 현실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 후보자 명부작성에 일반 당원이나 유권자의 의견을 반영하는 제도적 장치 없이는 선거의 대의(代議)기능을 충분히 살릴 수 없다. 더구나 기득권에 집착하는 정치권이 선거제도의 획기적 개혁에 얼마나 동의할지도 문제다. 정치권이 자기 살을 먼저 도려내야 국민에게 고통분담을 설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국민회의가 5월 지방선거를 현행제도로 실시하려고 하는 것도 유감이다. 시일이 촉박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지방의원 정수나 선거구제 변경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방만한 규모와 비효율적 운영으로 비판받아온 지방의회를 손대지 않고 정치권 구조조정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