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허리띠를 졸라매든 등허리가 휘든 뒷바라지하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하지만 유학생 부모들은 요즈음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를 불러오는데 한몫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아들을 본의 아니게 유학보낸 나도 마찬가지 심정이다.
‘해외연수’라는 이름의 무분별한 유학이 대학생의 필수코스로 여겨질 무렵이었다. 4학년이 되면서 장래의 진로를 고심하던 아들은 2학기 등록금으로 연수를 가겠다고 나섰다. 나름대로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견문과 실력을 쌓겠다는 의지를 저버릴 수도 없지만 형편이 따라주지 못하니 어미로서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었다.재산세를 낼 집도 없고 큰 돈이 입금된 통장도 없는 가난한 어미는 하는 수 없이 10여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부었던 국민연금을 해약해 2백만원을 마련해주었다. 아들은 유학에 필요한 재산관계보증인 서류 등을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 간신히 해결했다.
아들이 작년 7월21일 뉴욕에 도착했을 때는 남은 40만원이 총재산이었다. 용돈조차 제대로 주지 못하고 보냈으니 밥은 거르지나 않는지, 잠은 제때 자는지, 제대로 먹는지 어미의 마음은 늘 아프기만 했다. 하지만 아들은 공부도 잘 하고 적응하는데도 문제가 없으니 염려말라면서 돌아갈 때는 복학할 때 필요한 등록금까지 벌어 가겠다며 너스레를 떨어 어미를 위로하곤 했다.그런데 IMF 한파가 몰아쳤다. 우리나라 돈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유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가중되기 시작했는데도 어미는 한푼도 보내주지 못하니 아픔 뿐이었다.
그런 어느 날 뉴욕에서 전화가 왔다. 하교 후 저녁시간에 식당 웨이터로 일한다는 아들이 1천달러를 송금했다는 연락이었다.
“엄마, 춥게 살지 마시고 따뜻한 털옷이나 한벌 사입으세요. 이곳 교포들도 자동차니 뭐니 있는대로 팔아서 고국으로 송금하고 있어요. 저는 염려마시고요.”
아들의 전화가 끊어지기도 전에 흘러내린 뜨거운 눈물이 가슴을 적셨다. 매서운 IMF 한파도 이처럼 뜨거운 사랑이라면 어렵지 않게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아들이 귀국할 때쯤이면 따사로운 봄바람이 불어오기를 기원해본다.
김영희(경기 군포시 금정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