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족(族)의원’으로 불리는 정치인이다.
특정 정부부처나 관련업계, 선거구민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의원들을 말한다. 과거 오랫동안 정권을 장악한 자민당에 이런 정치인이 많다.
이들은 관료나 업계에 ‘편의’를 제공하는 대신 선거때 도움을 받는다. 정치자금 조달의 통로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정치인과 관료, 관련업계의 유착구조는 ‘철(鐵)의 삼각형’으로 표현될 정도다.
일본 금융개혁 논의와 한일(韓日)어업협정 폐기는 ‘족의원’의 영향력과 폐해를 잘 보여준다.
금융개혁의 초점은 ‘공룡부처’인 대장성의 권한을 축소, 금융정책을 대장성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론과 야당은 물론 연립여당 내에서도 대장성에 메스를 대지 않으면 안된다는 목소리가 비등했다.
어업협정 파기도 마찬가지. 자민당 ‘수산족’을 대표하는 시마무라 요시노부(島村宜伸) 농림수산상 등은 외무성이 한국정부와 잠정합의한 협상안을 거부, 일방파기 결정으로 몰고 갔다. 7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에서 어민들의 표를 의식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정무차관을 전권특사로 한국에 파견, 잠정합의안을 마련한 외무성 입장이 무척 난처해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치인이 업계나 선거구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을 모두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유착 정치’가 지나쳐 정책결정, 특히 외교정책을 왜곡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본내에서조차 국가간에 맺은 조약을 일방파기한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라며 ‘나쁜 시기의 위험한 결단’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본은 세계2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정치는 여전히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혹평이 국내외에서 나오고 있다.
권순활<동경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