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케이블TV는 95년초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출범했다. 정부는 21세기를 주도할 뉴미디어로서 케이블TV의 미래를 장담했고 대기업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고 사업권을 얻기 위해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 그후 3년의 세월이 흐른 요즘 케이블TV의 현실은 너무나 참담하다. 지난 한해 케이블TV업계의 총 적자규모는 4천억원에 이르며 이를 감당 못한 사업자들은 이미 내보냈던 프로를 재방송하면서 시간때우기로 연명하고 있다.
채널별 평균 재방송률이 50%를 넘다 보니 방송 내용에 실망한 시청자의 이탈현상도 빨라지고 있다. 현재 20%에 육박하는 유료가입자의 해약률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의욕에 찼던 사업자들도 적자가 누적되고 사업전망이 흐려지자 투자를 기피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케이블TV업계 전체가 진퇴양난의 깊은 수렁에 빠진 느낌이다.
국내 케이블TV의 실패는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기본장비조차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필요성과 명분만으로 서둘러 추진한 결과가 어떠할 지는 묻지 않아도 자명하다. 정부의 말만 믿고 사업에 뛰어든 참여업체의 단견과 방만한 경영도 문제였다.
미래 고도정보사회에서 케이블TV의 중요성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선진국에서는 각 가정에 연결된 케이블망을 통해 방송은 물론 홈뱅킹 인터넷사업 등 다양한 부속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곧 가시화할 초고속정보통신망도 이를 바탕으로 이뤄지게 되어 있다. 미래생활에 필수적인 기반시설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케이블TV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업에 투자된 1조2천억원이라는 엄청난 자금을 사장하지 않기 위해서도 구조조정은 꼭 필요하다.
정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기존 케이블채널의 장르를 재조정해 경쟁력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장르가 중복된 채널을 단일화하고 전문채널의 정신에 맞게 분야를 재조정하는 등 처음부터 새판을 짜야 한다. 업체의 요구대로라면 오락 스포츠 등 상업성이 높은 분야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채널별 특성화와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올 상반기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는 통합방송법도 케이블TV가 경쟁력을 지닐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추진해야 한다.
정부지원 못지않게 업체들의 자구노력도 중요하다. 방송사업에는 몇년후를 내다보는 지속적 투자가 필요한 만큼 보다 공격적인 경영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붙잡아야만 케이블TV의 정착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