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이훈/미국인 친구의 편지

  • 입력 1998년 1월 31일 20시 16분


회사원 이모씨(30·경기 고양시 화정동)는 최근 홍콩에서 날아온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대학졸업후 4년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미국인 친구에게서 온 편지였다. 서점 외국서적 코너에서 만나 2년여동안 허물없이 지냈던 마크 스톱코(28)는 미국 포틀랜드 출신. 중국어를 전공한 그는 동양문화에 심취, 92년 혼자 한국에 왔다. 이씨는 얼마전 아내와 돌이 된 딸아이와 함께 신촌 거리를 지나다가 때마침 한국에 온 그를 우연히 만났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 자세한 얘기를 나누지 못한 채 연락처만 교환하고 헤어졌었다. “너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늘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딸아이는 너를 많이 닮았더구나….” 편지에서 그는 옛 친구를 다시 만난 기쁨과 그간의 생활을 자세히 적었다. 92년 서울에 온 그가 처음 가진 직업은 교통부 자문관. 한달에 1백50만원 정도를 받았던 그는 외국으로 보내는 서류를 검토하는 일을 했고 연세대에서 한국어도 배웠다. “한국 여인과 결혼하고 싶고 가능하다면 한국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했던 그는 2년여동안 교통부 자문관으로 일한 뒤 외환은행을 거쳐 프리랜서 작가로도 일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불황은 그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수입이 절반이상 줄었고 간간이 들어오던 영어 강사 일도 끊겼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그는 지난해 9월 한국 생활을 청산하고 홍콩으로 떠났다. “한국과 거래 규모가 큰 무역회사에 취직했어…. 이곳 생활도 그럭저럭 괜찮지만 혼자 있을 때면 아직도 추억이 서린 신촌 거리가 떠올라…. 내가 아는 한국인들은 빠른 시일안에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거야….” “언젠가 다시 돌아온다”는 말로 그는 편지를 맺었다. 〈이 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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