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 정치를 잘못하고 경제인이 경영을 잘못했으며 소비자가 소비생활을 잘못해서 이렇게 된 것임에 틀림없다. 정치인과 경제인 그리고 소비자가 잘못하게 된 까닭은 그들의 정신자세가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 「항상 책과 함께」 습관 중요
정신자세가 무너졌다 함은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옳고 그름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함은 생각이 부족했음을 의미한다. 깊고 냉철한 생각 또는 슬기로운 생각이 부족했던 까닭에 우리는 감정과 욕심이 가리키는 바를 따라 행동했고 그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저지른 일들이 쌓여서 ‘IMF사태’라는 오늘의 난국을 초래한 것이다.
우리가 오늘의 난국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신자세를 바로세워야 한다. 정신자세를 바로세우기 위해서는 사리(事理)를 따라서 바르고 슬기롭게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바르고 슬기롭게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는 방법의 하나가 좋은 책을 읽는 일이다. 그러나 근래의 우리나라는 좋은 책을 별로 읽지 않는 편이다. 좋은 책은 온갖 신종 오락에 밀려서 천대를 받고 있다.
우선 책과 친해지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내용이 무겁고 어려운 책과는 얼른 친해지기가 어려우므로 쉽고 흥미로운 책부터 시작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쉽고 재미있는 책 가운데는 마음의 양식으로서는 별로 좋지 않은 것이 많다.
가벼운 마음으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면서도 마음의 양식이 되는 것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샘터’ 또는 ‘한국인’같은 작은 잡지들이 그런 종류의 것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다. 근래에 자주 접하는 잡지 가운데는 ‘보람은 여기에’와 ‘좋은 생각’ 등이 내 관심을 끈다.
‘보람은 여기에’와 ‘좋은 생각’은 잡지의 이름부터가 밝고 건강한 사회를 건설함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목적에서 출발했음을 암시한다.
내용을 보아도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지혜를 차곡차곡 담으려고 한 노력의 흔적이 보인다. 흥미롭고 오밀조밀한 이야기를 통하여 바른 길을 은연중 제시하고자 한 의도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잡지에는 아쉬운 점도 있다. 전반적으로 가볍고 얄팍하다는 인상을 준다. 반짝이는 이야기들이 단편적이며 그 단편의 구슬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실 또는 끈같은 것이 있었으면 더욱 좋을 듯하다.
특히 ‘보람은 여기에’에는 ‘성공을 위한 방법’ 또는 ‘성공의 열쇠’ 등을 자주 소개하고 있는데 거기서 전제되고 있는 ‘성공’이 통속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참된 성공, 참된 보람이 무엇인가를 밝혀주는 무게있는 말의 밑받침이 있으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앞에서 언급한 작은 잡지는 책을 가까이하는 시작으로서 좋을 뿐이며 그것들이 본격적인 의미의 ‘좋은 책’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쁜 일과 속에서 틈틈이 읽기에 좋은 책이 반드시 가장 좋은 책은 아니다. 흥미를 느끼며 가볍게 읽는데 적합한 작은 잡지에는 그 나름의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책에도 여러 가지 계층이 있으므로 가벼운 책에서 출발하여 정말 무겁고 깊이 있는 좋은 책으로 옮겨가는 것이 독서의 바람직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무게가 있는 책에서 깊은 맛을 느끼는 사람은 이미 어떤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다.
▼ 출판인 새로운 각오 다져야
바람직한 독서풍토는 좋은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의 의지만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읽을 만한 좋은 책이 대량으로 출판되어야 하고 그 좋은 책들의 존재가 독자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극성스러운 상업주의때문에 양서(良書)들이 악서(惡書)들에 의해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출판문화의 혁신을 위하여 필자들과 출판인들이 새로운 각오로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김태길(서울대명예교수·학술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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