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30)

  • 입력 1998년 2월 4일 07시 45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98〉 모래 위에 엎드린 채 하염없이 울고 있던 저는 마침내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리고 왕자님이 빠져 죽은 바다를 넋이 나간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원망스러운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는 동안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왔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일어나 어디랄 것도 없이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바위 틈에 쓰러졌습니다. 저의 가슴에 사랑의 불꽃을 피워놓고 혼자 알라께로 가버린 야속한 왕자님을 원망하기도 하며 저는 혼자 울다가 까무러치듯 잠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저는 섬을 둘러보았습니다. 험준한 산들로 이루어진 그 섬에는 사람이라곤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엎어지고 자빠지고 섬을 둘러보는 동안 어느새 다시 날이 저물었으므로, 저는 다시 어느 바위 틈에 웅크리고 잠을 잤습니다. 꿈 속에서도 저는 왕자님을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다시 날이 밝자 저는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의 앞에는 알라의 자식으로선 좀처럼 오르기 힘든 험준한 오솔길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길은 섬과 본토를 연결하는 좁은 계곡으로 통하는 길이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저는, 나무 열매를 따먹고 개울물을 마시면서, 그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몇날 며칠을 두고 그 길을 걸은 끝에 저는 마침내 본토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거기가 도시가 있고 사람이 살고 있는 본토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저의 앞에 펼쳐진 대지는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만큼 척박하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 척박한 산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던 저는 문득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대추야자나무만큼이나 큰 뱀 한 마리가 허둥지둥 이쪽으로 기어오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뱀은 좌우로 몸을 뒤뚱거리며 오고 있었는데, 한 자나 되는 혀는 땅에 축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뱀은 위험에 쫓기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높은 바위 절벽 위로 기어올라가 뱀의 거동을 살펴보았습니다. 뱀 뒤에는 과연 무시무시하게 생긴 용 한마리가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뱀은 달아나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만, 이미 심한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한 뱀의 뒤를 쫓아온 그 끔찍한 용은 마침내 뱀의 꼬리를 물고 말았습니다. 꼬리를 물린 뱀은 몸부림을 치느라고 혓바닥을 온통 다 빼물고 말았습니다. 그 끔찍한 광경을 굽어보고 있던 저는 엉뚱하게도 뱀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의 이빨에 꼬리를 물린 채 절망적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뱀의 처지가 나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저는 저만치 벼랑 끝에 놓여 있는 커다란 둥근 바위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벼랑 끝에 놓인 둥근 바위는 집채만이나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알라의 도움을 빌면서 힘껏 그것을 밀어젖혔습니다. 처음에는 꿈쩍도 하지 않던 그 큰 바위는 마침내 절벽 밑으로 굴러떨어져 용의 머리 위로 떨어졌습니다. 용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고, 뱀은 마지막 순간에 목숨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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