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에도 정리해고가 필요한가.‘하룻밤의 바람(혹은 정사)’이라는 뜻의 ‘원 나잇 스탠드’는 남남의 남녀가 검은 머리 파뿌리될 때까지 해로한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님을 절감케하는 영화다.
“내이름은 맥스. 35세이며 애는 둘, 아름다운 아내가 있다… 아주 성공했다는 얘기다.”
영화는 주인공(웨슬리 스나입스 분)의 당당한 발걸음과 자기소개로 시작한다. 그의 자신만만한 시야속에 지적이면서도 청초한 백인여자 카렌(나스타샤 킨스키)이 들어오면서 세상은 달라진다. 우연인듯, 아니 필연인듯 하룻밤의 인연이 맺어지고 두 사람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미 맥스는 예전의 맥스가 아니었다. 모든 것이 지겨워지고, 사람이 멍해지고…. 그러니 두사람은 각자의 부부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합칠 수밖에.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감독 마이크 피기스는 이 영화를 단순한 ‘불륜끝 행복시작’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몇가지 장치를 해두었다.
첫째는 흑인남자와 백인여자의 결합.
‘다이하드’‘프레데터’같은 할리우드영화에는 흑백의 우정이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이것도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이상을 상상의 세계에서나마 이뤄보고자 하는 것뿐이라고 문화비평가 레슬리 피들러는 갈파했다.‘보디가드’에서 케빈 코스트너와 휘트니 휴스턴의 로맨스가 나오지만 이는 남성―백인―우월, 여성―흑인―열등이라는 등식에 따른 것이어서 새로울 것도 없다는 평. 영화속 흑인남자 웨슬리 스나입스와 백인여자 나스타샤 킨스키의 결합은 흑인에게는 신분 상승을, 여자에게는 사랑의 승리를 의미하는 새로운 코드로 해석된다.
둘째, 두 사람이 맺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 AIDS로 사망선고를 받은 친구 찰리라는 설정도 재미있다(카렌은 찰리의 형수다).
할리우드영화에서 AIDS는 모든 종류의 비정상에 대한 정상인들의 차별, 그리고 타자에 대한 인간의 편견과 경직성을 고발하는 장치로 종종 나타난다.
찰리는 맥스에게 끊임없이 “자넨 행복할 권리가 있어. 인생은 짧아. 리허설이 아냐”하고 말해준다. 죽음을 앞둔 친구가 온몸으로 얻은 진리를 일깨워주는데 우리의 주인공이 결혼은 정상이요, 불륜은 비정상이라는 굴레에 매여있을 수 없다.
마이크 피기스의 감각적 영상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장치다. 맥스를 CF감독으로 설정해 CF를 찍는 장면과 두 연인의 감정적 흔들림을 교차시킨 것이나 잦은 암전으로 우연성과 신비로움을 생각할 시간을 준 것도 의미있다.
그리고 마지막, 삶이란 우연의 연속이며 알고보면 아이러니에 불과하다는 감독의 통찰력도 눈여겨봄직하다.
주인공 남녀가 ‘운명적 사랑’에 빠져있을때 웨슬리 스나입스의 아내와 나스타샤 킨스키의 남편도 비슷한,알고보면 별것도 아닌, ‘사랑병’에 걸려있었다. 결말은 스와프(Swap·부부를 서로 바꿈)다. 영원해야 마땅한 주인공의 사랑도 과연 영원할 수 있을지는 글쎄, 며느리도 모를 일이다. 7일 개봉.
〈김순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