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박경아/곡예사의 비예

  • 입력 1998년 2월 5일 20시 28분


4일 오후 경기 동두천시 상패동 동광교 옆 공터. 겨울햇살 아래 허름한 천막, 나무장대와 철봉더미가 을씨년스럽다. 간이화장실 2개와 가끔 천막을 드나드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사람 사는 곳’임을 알린다. 전국에 4개밖에 안남아 있는 전통 곡예단 중의 하나인 ‘비룡곡예단’이 난민처럼 생활하는 곳이다. 단장 허문석(許文石·34)씨. 전기담요가 깔린 천막안 한평반짜리 방에는 두살배기 아들이 석유곤로 냄새가 자욱한 가운데 곤히 잠들어 있다. 허씨는 “가뜩이나 경기가 나쁜데 행정당국의 무성의로 신정 구정 대목을 다 놓치고 말았다”고 허탈해했다. 지난해 11월말 춘천공연을 끝내고 이곳에 임시로 짐을 푼 그는 서울 은평구 불광1동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공터를 다음 공연장으로 계획, 12월중순 은평구청에 공연 및 가설건축물축조신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통상 하루이틀이면 가부가 결정될 일이 한달반을 끌더니 지난 3일에야 안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해당지역이 미관지구이며 인근 아파트주민의 민원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허씨는 “기다려보라”는 구청측의 얘기에 기대를 걸고 공터소유주인 라이프주택과 1월15일부터 보름간 사용계약을 맺고 사용료 2백20여만원을 냈으나 이마저 날리게 됐다. 가족단원 4가족에 성인만 22명. 게다가 신체장애인들까지 몸담고 있는 비룡곡예단원은 어릴 때부터 대물림으로 곡예를 배워 유랑생활이 서러워도 곡예단을 떠날 수 없다. 원숭이 6마리, 강아지 4마리 등 동물가족은 올 겨울 ‘박수’도 못받고 ‘먹이’도 충분히 먹지 못해 핼쑥하다. “전남 순천 등지로 알아보고 있지만 갈수록 공연장소 빌리기가 쉽지 않네요. 어디서든 근사하게 천막을 다시 세워 단원들이 무대에 서야 먹고 살텐데….” 〈박경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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