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창]홍순용/거품제품은 사절

  • 입력 1998년 2월 6일 08시 55분


북유럽에서도 가장 추운 핀란드의 북쪽지방에는 여우와 밍크가 많이 살고 있으며 생모피 생산량도 세계에서 손꼽힌다. 당연히 이곳에 오기 전 모피가 매우 흔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 수도인 헬싱키에서 모피 입은 여성을 구경하기는 매우 힘들다. 백화점에서는 간혹 눈에 띄지만 대부분 인근 러시아에서 쇼핑 온 신흥부호의 부인들이거나 나이 많은 핀란드 여성들이다. 우리나라에서 무스탕이라 부르는 양피 제품을 입고 다니는 핀란드 남성도 보기 쉽지 않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가 넘는 나라, 그것도 생모피 생산국가에서 모피가 왜 일반적이지 않을까. 핀란드인의 소비행태 중 눈에 띄는 것은 중급품 선호와 중고품 사용습관이다. 스톡만이라는 스웨덴 최대 백화점에서도 세계적인 유명브랜드의 제품을 구경하기 힘들다. 소비자는 물론 수입업체들도 ‘거품’이 든 제품을 선호하지 않아 자연스레 품질이 좋은 중급품을 중심으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또 중고품 사용습관이 일상화되어 있어 동네마다 매주 토요일 또는 일요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사용하던 책 식기 가전제품 의류 등을 파는 벼룩시장에 나와 물건을 사간다. 소득세가 약 35∼40%에 달해 핀란드에서 개인이 고가품을 구입하기 어려운 점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실용성을 중요시하는 소비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핀란드도 90년대 초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뻔 했을 정도로 경제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가 앞장서서 국민에게 실상을 알리고 도움을 청해 92년부터 연속 3년간 임금동결, 대폭적인 정부지출 삭감 등으로 난국을 극복했다. 우리는 96년 총 8억8천만달러의 모피류를 해외에서 수입한 반면 모피류의 수출은 6천4백만 달러에 불과했다. 물론 모피류 수입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봉제기술을 가진 우리나라가 생모피를 들여와 가공하여 일류 모피 제품으로 만들어 이를 부유한 나라에 수출, 외화를 벌어들인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이제 우리는 ‘모피환상’에서 벗어나 모피류에서도 세계적인 수출국가가 될 수 있는 때가 온 것 같다. 홍순용(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 헬싱키 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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