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창]양기모/효과적 업무분담과 서류정리

  • 입력 1998년 2월 7일 19시 43분


독일에 부임한 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짧은 기간이지만 독일을 한국과 비교하면서 갖게 된 큰 의문이 하나 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세계 제3위의 경제대국으로 이끈 원동력과 경쟁력은 무엇일까. 선입관 내지 단견일지는 모르나 아마 생활속에 밴 효과적인 ‘업무분담과 서류정리’가 아닐까 싶다. 거래은행에 자금대출을 신청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거래실적은 있으나 보증인도 없는 외국인의 신분이라 큰 기대를 갖지 않고 구비서류가 무엇인지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갔었다. 일선 창구근무 여직원은 두세번 질문한 뒤 그 자리에서 1만마르크를 빌려주었다. 상급자의 결재는 물론 문의절차도 없이 2,3분 만에 이른바 ‘원스톱 서비스’가 이뤄지는 현장이었다. 평소 ‘예금이자는 한푼도 지급하지 않으면서 각종 은행수수료 등은 꼬박꼬박 챙긴다’고 불평해왔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담당직원에게 여러번 고마움을 표시했다. 또한 독일인들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 중에 ‘모든 서류가 정리됐다’는 말이 있다. 단순히 서류뿐 아니라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같이 일하는 직장동료가 휴가를 떠나도 날짜별 주제별로 다채로운 색상의 간지를 이용해 철해 놓은 파일을 볼 때면 업무대행을 맡아도 걱정이 없을 정도다. 독일인들이 이와 같은 전통을 갖게 된 것은 오랜 근대화 및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방법으로 체득했다든지 혹은 군대의 전투력 향상을 위해 엄격한 규율 속에서 배웠다는 등 여러가지 의견이 있다. 하루하루 갈 길이 멀게 느껴지는 국내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서류 하나라도 철저히 정리해가며 다져나가는 것이 빠른 극복의 지름길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양기모<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 베를린무역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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