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36)

  • 입력 1998년 2월 10일 08시 43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104〉 “오! 저 훌륭한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이 처녀는 얼마나 행복할까? 저런 아름다운 청년의 품에 안겨 자면 얼마나 좋을까?”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청년은 저를 향하여 이마에 손을 대고 가볍게 인사를 해 보일 뿐 별다른 관심도 나타내지 않는 얼굴로 이내 거실에서 나가버렸습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갑작스러운 출현으로 제가 부끄러워할 것 같아서 그처럼 황급히 자리를 피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가 객실에서 나가버리자 저의 영혼도 함께 그를 따라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은 참 좋겠어요. 저런 훌륭한 신랑한테 오늘밤 시집을 가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청년이 나가버리자 저는 곁에 앉은 처녀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처녀는 까르르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머! 언니는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저분은 제 신랑이 아니라 오빠랍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 시집가지 않아요. 아직 오빠도 결혼하지 않은 걸요.” 처녀가 이렇게 말하자 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처녀는 다정스레 제 손을 잡아주며 말했습니다. “언니, 이제 모든 걸 사실대로 말씀드릴게요. 아비도 어미도 없는 가난한 처녀의 결혼식 피로연이 있다고 했던 건 모두 언니를 여기까지 오시게 하기 위하여 저 노파가 꾸민 연극이었답니다.” 이 말을 들은 저는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하기 위해서 꾸민 연극이라고요? 대체 무엇 때문에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거죠?” 제가 이렇게 말하자 처녀는 다정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죄송해요, 언니. 이런 연극을 꾸몄던 것은 모두 오빠 때문이랍니다. 저의 오빠는 언니를 너무나 사랑하여 깊은 병에 걸리고 말았으니까요. 오빠는 혼례식이나 잔치 때 자주 언니를 뵌 적이 있다고 하는데, 언니를 보고 그만 홀딱 반하여 미칠 듯이 사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언니한테 반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오빠를 보고 저는 놀려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게 이해가 가는군요. 관대하신 신께서 언니를 세상에 보기 드문 미인으로 만들어 놓으셨으니까요. 방금 이 방에 왔던 분이 바로 언니한테 반해 상사병에 걸린 저의 오빠랍니다.” 이 너무나도 뜻밖의 말에 저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처녀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언니를 그리워하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오빠는 마침내 저 노파에게 돈을 주어 언니한테로 보낸 것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만나도록 주선해 달라고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이 불쌍한 오빠를 위해 꾸민 일이니 제발 너그럽게 용서해주세요.” 그제야 저는 노파의 속임수에 떨어져 이 집에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아름다운 청년이 저를 사모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기쁘기만 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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