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할리우드 틀」거부한 갱영화 「퓨너럴」

  • 입력 1998년 2월 10일 08시 43분


7일 개봉한 미국 작가주의 감독 아벨 페라라의 갱스터무비 ‘퓨너럴(장례식)’은 할리우드 주류영화들이 보여주는 패턴화된 이야기의 한계를 뛰어넘는 작품이다. 갱스터들의 낭만과 통렬한 보복 대신 초라하기 그지없는 인간존재의 비극을 보여주는 수작. ‘퓨너럴’의 화면 한가운데에는 도입부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관(棺) 하나가 놓여 있다. 거기 누운 이는 대공황이 미국을 휩쓸던 1930년대 뉴욕에서 세력을 키워가던 마피아 템피오 가문의 막내 자니. 노여움을 누르며 그의 피살원인을 캐는 이들은 맏형 레이(크리스토퍼 월큰)와 둘째 체즈다. 이들은 기존의 ‘표준적인’ 느와르에서 볼 수 있는 단선적 인물들이 아니다. 맏이 레이는 자신에게 권총을 쥐어주며 절대보복의 철학을 가르쳐 주었던 아버지의 자살을 상처로 안고 있다. 겉으로는 카리스마적이어도 폭력의 의미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둘째 체즈는 예술가적 감성과 야수적 폭력성을 함께 지녔다. 배역을 맡은 크리스 펜은 극중에서 부드럽게 재즈를 부르면서도 느닷없이 폭발하는 야누스적 인물을 능숙하게 연기,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작품은 30년대 영화 ‘술에 젖은 숲’에서 독백하는 험프리 보가트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마피아가문이면서도 사회주의적이고 동성애적인 괴짜 막내는 이 영화를 보고 나오다 피살된 것이다. 형들은 라이벌 조직 보스를 주범으로 지목, 보복을 결심한다. 그러나 이후부터 감독은 진범이 누구이며 복수가 얼마나 장엄했는가를 보여주는 대신 낡은 이야기 패턴을 깨부순다. 과거사를 들추어 등장인물의 ‘인간성’을 해부하며 파격적 이야기로 인간이 얼마나 어이없이 죽을 수도 있는가를 보여준다. 충격적인 라스트 신은 폭력에 의존해 자기존재를 키워오던 가문의 자체붕괴를 보여준다. 관객들이 쉽게 감정이입할 수 없는 독특한 등장인물, 파격적 편집과 예측 불가능한 줄거리 전개, 감독이 직접 만든 블루스 등에서 보여지는 개성적 선율은 페라라의 마니아들을 형성시킬 만하다. 96년도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 〈권기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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