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노총 총파업 안된다

  • 입력 1998년 2월 10일 20시 13분


민주노총은 무언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6일의 노사정합의를 뒤집고 고용조정법제화 저지를 위해 총파업까지 불사키로 한 민노총의 9일 결의는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도대체 민주주의를 하자는 것인지, 깨자는 것인지 걱정스럽다. 어떤 협상의 자리에 대표를 파견한다는 것은 협상권을 위임하기로 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협상대표가 공식 협상테이블에서 동의한 합의는 그 이익집단이 직접 합의한 것과 같은 기속력을 갖는다. 협상대표가 동의한 합의를 뒤에 거부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질서인 대의제도를 훼손하는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협상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민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 대표를 파견하고 협상을 시종 지켜보았다. 그럼에도 고용조정법제화에 동의한 최종합의안을 임시대의원대회에 부쳐 부결시키고 파업을 무기로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의원회의가 표결이라는 민주적 형식을 취했으나 그 기본정서는 비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협상은 어차피 타협이다. 따라서 협상 끝에는 늘 미진함이 남게 마련이지만 그 미진함을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즉각허용과 전교조합법화 등은 민노총이 그동안 끈질기게 요구해온 사항들이다. 민노총은 이번 노사정협상에서 정리해고제 등 고용조정법제화에 동의하는 대가로 그 숙원을 관철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다시 정리해고제를 걸어 재협상을 요구하고 안되면 총파업을 벌이겠다는 것은 내것은 내것이고 네것도 내것이라는 식의 억지일 수밖에 없다.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등 노동시장 유연화 입법은 국제통화기금(IMF)이 국제신인(信認) 회복을 위해 시급성을 강조해온 이행과제 가운데 하나다. 지난 6일의 노사정 대타협으로 우리는 어렵게 IMF위기 극복의 전기를 마련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합의를 뒤집는다면 우리의 신인은 합의 이전보다 못한 상태로 추락할 것이 뻔하다. 민노총이 끝내 거리로 나가 총파업을 벌인다면 국가경제와 근로자의 고용기반 및 공동체 삶의 기본 틀 자체가 붕괴할지 모른다.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민노총은 거듭 생각해야 한다. 근로자에게 실업은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고통이다. IMF위기에 대한 근본책임은 대기업과 정책당국에 있다. 그럼에도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아직 가시화하지 않았고 정부가 약속한 실업대책도 충분치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파업을 벌인다면 그나마 법적 요건과 절차에 따라 진행될 정리해고 대신 국가경제 파탄에 따른 더 큰 대량실업을 막을 수 없게 된다. 민노총과 서울지하철 노조는 어떤 이유로든 파업을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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