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93년 4월. 인천의 한 변호사는 ‘인천법조’ 창간호에 사건브로커를 고용하고 과다한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의 현실을 개탄하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
이 글을 계기로 ‘법조계도 사정대상’이라는 인식이 확산됐고 변협의 자정운동이 뒤따랐다.
변호사단체들은 앞다퉈 비리변호사를 징계하고 자정운동을 벌인다고 발표했다. 법원도 각종 개혁안을 만들어 홍보했다.
그러나 소리만 요란했던 변협의 자정운동은 그해 4월15일 검찰이 비리혐의가 밝혀진 변호사 2명을 구속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변호사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브로커를 고용하고 전관(前官)이라는 이유로 고액의 수임료를 받게 됐다. 그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인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갔다.
의정부의 이순호(李順浩)변호사 문제를 계기로 다시 시작된 변협의 자정운동도 93년처럼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날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과다수임 변호사 76명의 비리혐의를 조사하고 있는 윤리위원회 변호사들은 “어떻게 동료들을 단죄할 수 있느냐” “현업 때문에 조사할 시간이 없다”며 주춤거리고 있다.
윤리위는 답보상태다. 9일 개혁변호사회 모임에 나온 한 변호사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를 단죄할 수 있는 불변의 잣대다”라는 의미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그러나 변호사들의 70∼80%가 어떤 형태든 사건수임관련 ‘사례’를 하고 있다는 자체 고백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을 다시 묻어두고 갈 것인가. 변호사들은 비리혐의자에 대한 강력한 징계는 물론 이 기회에 그들만의 ‘윤리장전’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검찰의 수사를 받는 부끄러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신석호<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