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조건은 철저하게 미국식 시장논리를 따르고 있다. 정책 패키지 또한 긴축 개방 자율화라는 고전적 처방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우리에게 요구하는 통화 재정긴축, 금융 재벌개혁, 산업구조조정, 자본 무역시장의 완전개방, 고금리와 환율자유화,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등이 바로 그렇다. 물론 이같은 처방이 그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 지원 프로그램의 타당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구제금융의 요구조건이 너무 가혹해 당사국의 경제회생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부정적 견해가 만만치 않다. 이는 아시아 국가들과유럽언론들의 비판적 시각만은 아니다. 하버드대의 제프리 삭스, MIT의 엘리스 암스덴 같은 미국의 경제학자들도 IMF의 획일적 처방이 한국의 건실한 경제기반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도 이에 가세했다. 그는 미국이 금융 외환위기에 빠진 아시아 국가들에 미국식 자본주의 운영방식을 즉각 도입하라는 혹독한 경제 사회적 처방을 내림으로써 반미(反美)감정이 싹트는 것을 우려했다. 그는 또 아시아 경제위기를 야기한 세계금융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국제금융질서 개선을 위해 선진7개국(G7)정상회담을 긴급 소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IMF의구제금융을받는‘빚진죄인’의입장에서IMF처방의 타당성을 놓고 논란을 벌이기는 어렵다. IMF와의 약속은 성실히 이행해야 하며 IMF체제를 ‘또 하나의 기적을 위한 시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IMF의 처방이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의 서로 다른 경제여건에 비추어 똑같이 유효한 것이 아니라면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재조정되어야 마땅하다.
김용정<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