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갈등 탐구]양창순/「내탓 네덕」에 화목한 가정

  • 입력 1998년 2월 11일 19시 51분


‘투사’라는 것이 있다. 위기가 닥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자 하는 심리다. 국제통화기금(IMF) 바람이 불면서 파탄에 이르는 부부가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럭저럭 묻혀 있던 부부 사이의 문제들이 위기가 닥치자 한꺼번에 불안 요소로 떠오르면서 서로 ‘네 탓’을 하게 된 때문이다. 사실 투사는 가장 미숙한 정신기제(매카니즘)다. 상대에 대한 분노의 감정만 불러 일으킬 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다. 물론 위기가 닥쳤을 때 ‘내 탓이오’하고 말할 용기를 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부부 사이에 가장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40대 초반의 김종환씨는 최근 아내로부터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평소 욕심많고 고집스러운 아내가 몰래 대출받아 시작한 증권 시세가 IMF 사태 이후 폭락했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아내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더군요. 생각 같아서는 흠씬 패주고 내쫓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니까요.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한다면 돈 잃고 아내마저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 딱 감고 위로했지요. 돈벌이 시원치 않은 내 탓이다 하면서요. 아내는 굉장히 감동한 모양이었습니다. 나 역시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경기도 어딘가에 새로 생긴 음식점 이름이 ‘내 탓, 네 덕’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현실의 모든 문제를 같이 풀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쉽게 ‘네 탓’만 하며 싸우기 쉬운 부부 사이. 꼭 한번 새겨볼 말이다. 양창순(서울백제병원 신경정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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