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
겨울은 영화산업의 비수기이다. 이런 시기에 영화 ‘타이타닉’이 사상 유례없는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매우 신기한 일이다. 아카데미상의 14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된 것도 역사적으로 두번째의 기록이다. 남자 주인공 디카프리오는 이제 미국가정, 특히 여학생이 있는 가정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이름이 되고 있다.
이 영화는 주제가 진부하고 상영시간도 길어 자칫 지루한 작품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타이타닉’은 흥행사상 최고액수의 돈을 벌어들이는 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낡은 이야기를 토대로 한 영화가 관객을 신선하게 해주는 비결은 무엇인가.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에서 실종됐던 ‘죽은 영웅’이 등장하기 때문은 아닌가. 지금까지의 로맨스 영화나 액션영화 대개가 ‘살아 있는 영웅’을 중심으로 그려온 것이 주류였다. 그러나 손수건을 석장쯤 젖게 만드는 ‘타이타닉’의 마지막 장면, 즉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죽음의 장면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우리의 문화는 지금까지 이같은 장면에 익숙하지 않았다. ‘죽지만 안죽는 시나리오’는 과거 ‘달라스’에서부터 ‘스타트렉’을 거쳐 ‘슈퍼맨’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영화에서 보아왔던 것이다. 이번에 ‘타이타닉’과 함께 아카데미상 후보로 지명된 ‘LA 컨피덴셜’이라는 영화만 보더라도 주인공은 ‘내일을 향해 쏴라’의 보니와 클라이드보다 더 많은 총탄을 맞아 전신이 온통 벌집처럼 되면서도 마지막 장면에 영웅으로 다시 등장한다.우리는 영화속에서 늘 주인공이 죽는 줄 알았다가 나중에 살아나는 장면을 보는 데에 익숙해 왔다. ‘타이타닉’의 결론은 그 반대여서 허무하고 놀라움을 준다.
실제 생활에서도 죽어서 영웅이 된 사람은 이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좋은 추억을 갖게해 준다. 또 그가 다시 살아나기를 기대하는 것도 인간의 심리인 모양이다.
〈정리·뉴욕〓이규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