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평/믿을만한 행정개혁 기대

  • 입력 1998년 2월 18일 21시 10분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17일 새벽 여야의 타협에 의해 국회를 통과하였다는 보도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가. 정부조직개편심의위에서 마련한 개편안의 일부는 여야의 타협과정에서 수정되었다. 민주주의는 타협의 정치이다. 정부조직개편을 여야가 타협으로 합의하였다는 점에서 의회정치가 한 단계 성숙한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정부조직의 개편은 국가의 기본 골격을 구성하는 일이다. 그렇게 중요한 결정을 심도있는 분석과 공개적 토론을 거치지 않고 며칠 사이에 ‘6인협의회’라는 여야정당 간부들만의 타협으로 결정한 일은 못내 아쉽다. 신 여소야대(與小野大)라는 정치상황에서 거대 야당의 의견을 감안하지 않고 새 정부의 의도에 맞는 정부구조의 틀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판을 짰어야 할 일이었다. 이 점은 앞으로 전개할 행정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재고해야 할 부분이다. 이번 국회처리 과정에서 정부조직개편안 중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예산기능은 이원화됐다. 그리고 대통령 직속으로 신설하려던 중앙인사위원회(인사위)안이 백지화됐다. 이런 방향으로 수정을 요구하는 야당의 논지는 대통령의 권한 집중에 대한 우려였다. 그런데 대통령제 정부에서 대통령산하 기구가 많으면 대통령의 권한이 집중된다는 생각은 순진한 발상이다. 박정희대통령에서부터 김영삼대통령까지 권한집중에 대한 비판은 계속 이어졌다. 과연 그들에게 산하 기구가 많아서 그랬을까. 산하 기구란 보고체계의 구성에 불과한 것이다. 인사위의 백지화도 아쉬운 점이다. 왜냐하면 인사위는 공무원 인사가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되는 소지를 막아 주기 위한 장치였기 때문이다. 과거에 권위주의 정부에서 공직을 능력과 자질이 아니라 지역적 또는 정권적 이해에 따라 재단하였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우리 행정에는 절실하다. 공정거래위원회와 비슷하게 준독립적으로 작용할 인사위가 있으면 우리나라 행정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정부조직 구성방법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믿을 만한 이론도 없다. 다만 이해관계에 따른 의견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국회의 타협안이 전반적으로 정개위안만 못하다는 말을 하기 어렵다. 오히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조직을 대폭적으로 개편하는 개혁방법에 문제가 있다. 그것은 사실상 ‘고비용 저효율’의 개혁이다. 기구개편은 공무원의 동요와 행정의 불안정성을 초래하는데 비해 행정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는 근거는 박약하다. 최근 행정개혁의 핵심은 작은 정부를 만드는 일인 듯하다. 작은 정부 이론과 관련하여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기구개편으로 부처 수와 장차관 수 몇 개 줄었다고 작은 정부가 될 수 없다. 핵심은 민간 간섭기능이 작아져야 하는 것이다. 김영삼정권에서 작은 정부를 만든다고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합치는 식으로 부처의 수를 줄였지만 오히려 공룡부처들 때문에 더 큰 정부를 만들고 말았다. 역사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작은 정부는 어디까지나 신뢰할 만하고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지 그것이 목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행정의 신뢰성과 효율성은 조직 편제가 아니라 조직 운영에서 나오는 것이다. 작은 정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할 만한 행정을 일구는 일이다. 차라리 큰 정부로라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과 같은 사태를 초래하는 못믿을 행정이 없어져야 한다. 기왕 정부조직개편안이 확정된 만큼 이제부터라도 행정관행과 직무수행방법을 계속 개선해서 행정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 특히 행정개혁은 정부의 경쟁력 향상에 최우선을 두어야 할 것이다. 김영평(고려대 교수·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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