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납치사건’은 박정희(朴正熙)유신체제 초기인 73년8월8일 대낮 일본 도쿄(東京)그랜드팔레스호텔 복도에서 김대중씨를 5,6명의 괴한이 납치한 사건이다.
괴한들은 김씨를 마취시켜 끌고나와 대기시킨 승용차 뒷좌석 바닥에 밀어넣고 오사카(大阪)로 달아나 부두에 대기중이던 ‘용금호’에 태워 사건발생 5일 뒤인 13일 밤 서울 동교동 자택근처에서 풀어줬다.
김씨는 도착 직후 “괴한들이 호텔에서 나를 토막내 살해하려다 발각되자 바다에 수장시키려 했다”고 증언, 한일 한미간에 국제문제로 비화했다. 당시 대다수 국민은 이 사건이 해외에서 유신체제를 비판하던 김씨를 제거하기 위해 중앙정보부가 벌인공작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수사에 착수한 국내 검찰 및 경찰, 일본 당국 등은 “한국의 정보기관이 개입된 어떤 물증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서둘러 수사를 종결했다.
하지만 중앙정보부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혹은 가시지 않았고 미국에 망명한 김형욱(金炯旭)전중앙정보부장은 77년 미하원 프레이저청문회에서 중앙정보부가 이 사건을 일으켰다고 증언했다.
사건발생 14년이 지난 87년 이후락씨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중정의 개입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인하긴 했지만 사건의 전모는 베일에 가려있었다.
〈특별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