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납치사건’의 현장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 그랜드 팔레스 호텔.
24년반의 세월이 흘렀어도 18일 찾아본 이 호텔은 사건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지상 23층, 지하 4층의 건물 외관은 변함이 없다. 일부 고층빌딩이 들어서긴 했지만 주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호텔 앞의 메지로(目白)거리 역시 교통량은 다소 늘었지만 왕복 4차로 그대로다.
변한 것은 호텔 내부. 당시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현대화됐다.
김씨가 머물다 납치된 22층. 호텔직원은 “세월이 워낙 흘러 방 배치가 그때와 같은지 알 수 없다”고 말했지만 확인 결과 이 역시 그대로였다.
“2210호 내부를 보여달라”고 부탁했으나 호텔측은 이를 거부한 채 “침대 커튼 양탄자 등 내부는 완전히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양일동(梁一東) 당시 통일당당수가 묵고 있던 스위트룸 2212호를 나오던 김씨는 맞은편 2215호에 대기해 있다 뛰쳐나온 중정요원들에 의해 납치돼 역시 중정 요원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2210호로 끌려갔다. 이어 그는 엘리베이터로 옮겨져 지하주차장에 세워놓은 승용차에 태워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봤다. 현재 주차장은 지하 2층과 3층. 물론 사건의 흔적은 주차장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건물은 그대로이나 사람은 많이 바뀌었다. 당시 근무했던 호텔 임직원 3백70여명 대부분이 이미 타계했거나 퇴직했다. 직원 중에는 이 사건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수소문 끝에 당시 신입사원이었던 50대 중견간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이 사건에 관해 어떤 인터뷰에도 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호텔측 방침”이라며 “나중에 언론보도를 통해 이 사건을 알게 됐을 때 직원 모두 크게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이 호텔에서 납치사건이 일어난 사실을 기억하고 일부러 찾아오는 한국 투숙객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런 손님은 거의 없다고 한 호텔관계자는 귀띔했다. 지난해 한국에 경제위기가 닥친 후로는 그나마 한국인 손님은 거의 없다.
호텔을 나와 주변을 뒤진 끝에 사건을 기억하는 한 일본인과 만났다. 호텔 옆에서 잡화점을 하는 나카노 마사오(中野稚夫·50)는 사건 당일에도 가게에서 일을 했다.
그는 “사건이 일어난 날에는 전혀 몰랐다”며 “나중에 언론 보도를 보고 그런 어마어마한 사건이 일어난 것을 알았다”고 회상했다.
〈특별취재반〉